인터뷰 공감共感

전통매듭으로 인생을 엮다

차명순 하영사 대표/매듭기능전승자

전통매듭으로 인생을 엮다 <BR />차명순 하영사 대표/매듭기능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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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듭이라는 게 참 신기하다. 좋은 인연을 단단히 엮어주고, 손끝으로 꽃과 나비를 피어나게 하며, 74년 인생을 행복하게 끌어주기도 한다. 매듭기능전승자 차명순 대표는 남대문시장에서 40년 가까이 ‘하영사’를 운영하며 우리 매듭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전통 수공예를 한 자리에서 꼿꼿하게 지켜가는 그녀의 뚝심은 중소벤처기업부 선정 ‘백년가게’ 간판과 제격이다.

매듭, 평생의 연이 되다

오직 끈 하나면 충분하다. 끈 한 줄을 꼬고, 묶고, 잡아 빼는 유려한 손놀림을 반복하다보면 어느새 손끝에서 화려한 나비, 잠자리, 꽃이 탄생한다. 무려 47년 동안 매듭과 함께한 ‘하영사’ 차명순 대표. 손마디가 딱딱하게 단련된 그녀의 손끝은 오늘도 변함없이 전통을 잇고 예술을 만든다. 시집을 가기 전 취미로 배워본 매듭공예가 평생의 업이 될 줄 누가 알았을까. 돌이켜보면 매듭은 참 많은 걸 엮어주었다.

"처녀시절, 한 동네 언니가 매듭을 한번 배워보라고 해서 취미삼아 시작했지요. 그 분이 저의 형님(남편의 누님)이에요. 알고 보니 제가 탐이나 남동생과 다리를 놓으려고 매듭으로 친분을 쌓은 거죠. 그렇게 결혼을 했는데 남편이 직업군인이라 훈련이 있으면 한 달씩 집을 비울 때가 많았어요. 적적해서 매듭을 만들어 형님을 드리면 잘 팔리는 거예요. 저 역시 밤을 새서 만들만큼 재미있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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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듭 덕분에 부부의 연까지 맺은 차명순 대표는 매듭 자체의 매력에 단단히 빠져들었다. 끈 한 가닥으로 못 만드는 모양이 없고, 내 손끝으로 예쁜 작품이 만들어지는 자체가 놀랍고 신기했다. 하나를 하면 제대로 파고드는 그녀는 원사를 직접 천연 염색하고, 실 한 올 한 올을 꼬아 합사(合絲)하는 과정도 전통 그대로 재현한다.

"천연염색은 한번으로 끝나지 않아요. 끓이는 염색은 최소 3번이 기본, 쪽 염색은 15~20번을 반복해야 제대로 색이 나오지요. 합사를 해 만드는 끈목은 하루 종일 짜도 3~5마(2.7~4.5m) 정도에요. 그래서 ‘내년에 전시회를 해볼까’하는 계획은 세울 수 없어요. 개인 작품은 오로지 손으로 만들기 때문에 최소 3년 전부터 준비를 해야죠."

전통을 지키며 잇는 과정은 결코 녹록치가 않다. 그럼에도 매듭을 손에서 놓지 않는 건 자부심과 사명 때문이다. 가지각색 노리개는 한복의 우아함을 더해주고, 최초로 재현된 고종황제 어연(가마)은 차명순 대표의 매듭공예 작품 덕분에 화려함과 품위를 되살아났다. 1997년 매듭기능전승자로 지정된 그녀는 숱한 제자들을 배출하는 한편 남대문시장에서 40여 년간 매듭전문 매장 ‘하영사’를 운영하며 고객들과 더 친근하게 만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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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을 함께한 남대문시장

"제 딸 이름이 '이하영'이에요. 그래서 ‘하영사’라는 간판을 달고 남대문에서 가게를 시작했지요."
차명순 대표는 핸드폰을 꺼내 딸의 영상을 보여준다. 독일에서 소프라노로 활동하는 이하영 소프라노가 평창올림픽 성공기원 오페라에서 ‘동백꽃 아가씨’를 열창하는 모습이다. 무엇보다 시선을 끄는 건 동백꽃처럼 붉은 한복과 거기에 달린 노리개. 물론 차명순 대표의 작품이다. 갓난쟁이 큰 딸이 마흔이 넘어 세계무대를 누비는 동안 차명순 대표는 묵묵하게 ‘하영사’를 지켰다.

"매듭전문점으로 산호, 호박, 비취, 노리개, 전통장신구 등을 판매하고 있어요. 예전에는 서울역에서 내려 ‘하영사’ 모르면 간첩이라고 할 정도로 유명했어요. 박술녀, 한순례, 이영희 등 한복으로 내로라하는 이들이라면 제 매듭으로 만든 노리개와 장신구를 안 거친 사람이 없지요. 요즘에는 구입보다는 대여가 많아서 수요가 많이 줄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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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명순 대표에게서 아쉬움이 스치지만 남대문시장을 향한 애정만은 두둑하다. 전국적으로, 전 세계적으로 관광객이 찾아오는 들썩거림이 좋고, 시장 특유의 넉넉함과 이웃 상인들과의 오랜 인연이 좋다. 돈을 벌려면 강남으로 와야 한다며 좋은 조건을 제시받은 적도 있지만 차명순 대표는 지금껏 남대문시장을 고집하고 있다. 가게이면서 공방이고, 사랑방이기도 한 ‘하영사’는 그 공기가 참 포근하다.

"방송을 보고 찾았다며 미국에서 온 손님도 있고, 매듭을 배우고 싶다며 지방에서 올라온 친구들도 있어요. 해외로 나가기 전에 전통공예를 익히고 싶다며 찾기도 하고요. 매듭이 힘은 드는데 수입은 안 되니까 잘 안 배우려고 해요. 10명을 가르치면 2~3명밖에 안 남지요. 그래서 저희 가게에서 함께 일한 제자들에 애정이 많아요. 넷이나 남대문시장에 가게를 열어줬어요."

경쟁자가 늘어난 게 아니냐고 묻지 차명순 대표는 대수롭지 않게 웃는다. 손님은 좀 줄 수 있지만 매듭을 더 널리 알리고 보급하는 좋은 일이 아니며 말이다. 47년동안 매듭이라는 한 길을 걸어온 이의 품은 이렇게나 넓고 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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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를 잇는 매듭, 백년가게 기약

올해 ‘하영사’에는 ‘기능전승자의 집’이라는 간판 옆에 ‘백년가게’라는 간판이 추가되었다. 중소벤처기업부 선정 ‘백년가게’는 30년 이상 명맥을 유지하면서도 오래도록 고객의 꾸준한 사랑을 받아온 점포에게 수여하는 인증이다. 우수성과 성장가능성을 높이 평가받아 앞으로 100년의 역사를 쌓아가길 희망하는 가게이다. 이에 차명순 대표는 넌지시 며느리 자랑을 한다.

"며느리에게 매듭을 가르쳐주었는데 창작력과 손재주가 뛰어나요. 늘 대를 이을 후계자가 없어 안타까웠는데 이제 며느리가 내 대를 이어가도 되겠구나 싶습니다. 이 가게도 며느리에게 승계시켜야지요."
무엇이든 빠르게 바뀌는 시대, 전통을 지키며 대를 잇는 가게라니 더욱 각별해진다. 며느리 김지혜 씨에게 매듭의 미래를 당부한 차명순 대표는 그간 추가로 모은 자료를 정리하여 후대에 남기는 것을 또 하나의 사명으로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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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에 [전통매듭과 현재의 만남]이라는 책을 냈는데 17년 동안 더해진 자료와 경험을 더해 후배들을 위한 기록으로 책을 다시 낼 계획입니다. 궁극적으로는 매듭박물관을 세우는 게 꿈이에요. 저는 전시회를 하면서도 작품을 팔지 않고 다 모아두었어요. 매듭박물관이라는 꿈이 있었기 때문인데요. 글쎄요? 그때가 언제가 될까요?"
책이며 박물관은 차명순 대표 개인의 욕심이 아니다. 우리 전통을 좀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제대로 보존하면 후배에게 가이드를 제시하고픈 공적인 욕심이다. 딱 일흔네 번째 생일을 맞은 그녀는 여전히 꿈을 꾼다.

"음력 11월 20일, 오늘이 제 생일이에요. 생일을 맞아 좋은 분들이 찾아주셨네요."
중소상공인으로서 40년 가까이 남대문시장을 지킨 차명순 대표는 노란우산에도 관심을 기울인다. 처음에는 갸웃거리다 홍대에서 ‘준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아들도 이미 가입했다며 반색한다. 자신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대를 ‘하영사’를 이어갈 수 있도록 든든한 지원군이 될 노란우산. 매듭 덕분에 또 하나의 소중한 인연이 엮였다.

"매듭뿐 아니라 전통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장인들이 많으세요. 벌이가 안 되어 힘겹게 명맥을 이어가는 분들이 많은데요. 다른 걱정 없이 전통의 지키는 일에만 몰두할 수 있는 지원 제도가 보완되면 좋겠어요."
차명순 대표는 평생 매듭을 지으며 전통을 이어온 손을 맞잡고 당부를 전한다. 누구든 100년을 이어갈 수 있는 전통공방과 가게가 많아질 수 있기를…. 그녀의 간절한 바람이 이뤄지길 함께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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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영사
매듭전문(산호, 호박, 비취, 노리개, 전통장신구)
서울 중구 남대문시장 4길 3 중앙상가 C동 지하 23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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