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이라도 음식을 직접 만들어 차려본 이라면 알 것이다. 밥과 국, 여기에 반찬 서너 가지를 더한 한 끼를 차리는 일이 얼마나 고된 일인지 말이다. 장을 보고, 재료를 손질하고, 지지고 볶고 끓이는 조리 과정을 거쳐, 감칠맛을 더하는 일련의 수고로움이 동반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내 입맛에 맞는 동네 반찬가게를 만나면 반가울 수밖에 없다. 대전 중리시장에 위치한 은혜반찬이 20년 넘게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비결이기도 하다.
24년 한 자리를 지킨 반찬가게
“매일 먹는 반찬이잖아요. 자극적이지 않게, 집에서 만드는 것처럼 정성을 쏟습니다.”
아침 6시 반부터 나와 나물을 무치고 전을 부치고 국을 끓이는 분주한 손놀림에는 흥이 묻어난다. 20년 넘게 한자리에 있었으니 오고 가는 손님들과는 어느새 가족처럼 가까워졌고, 내 가족 같은 손님이 먹는 음식을 만드는 일이기에 자연스럽게 흥이 나는 것이다. 덕분에 은혜반찬에는 좋은 재료, 정성을 다한 조리는 물론 김희옥 대표의 유쾌함까지 비법으로 더해진다. 동태탕, 오징어조림, 양념두부, 고갈비, 잡채, 김치 등 맛깔스러운 반찬이 기다리는 곳, 은혜반찬이 중리시장을 든든하게 지키고 있다.
단체 반찬 배달도 환영
반찬가게는 오랜 시간 한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믿음이 갑니다. 은혜반찬을 처음 어떻게 시작했는지 궁금합니다.
1998년, 처음에는 수제 어묵으로 시작했어요. 아이가 한창 클 때라 여러 일을 도전하다가 장사는 처음 도전한 거죠. 시장 안에 자리해 있어서 부담이 적었던 것 같아요. 당시만 해도 젊을 때니까 수제어묵으로 시작해서 어묵을 전으로도 부쳐 보고, 떡볶이와 김밥도 팔아보고 여러 가지 시도를 했어요. 그러다 안정적인 수요를 낼 수 있는 반찬으로 정착했습니다. 초창기에는 경험이 없는 만큼 책으로 공부하면서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도 했어요. 그렇게 매일 노력하다 보니 어느덧 24년이 훌쩍 지났습니다.
메인 요리부터 국, 일상적인 반찬과 별식까지 맛깔스러워 보이는 음식들이 푸짐하게 진열되어 있습니다. 종류가 몇 가지인가요? 주요 반찬을 소개해주세요.
전체 가지 수만 따지만 120~30가지는 될 거예요. 김치만 해도 배추김치, 겉절이, 파김치 등 10가지가 넘으니까요. 일반 밑반찬은 두루 갖추고 있고요. 육개장, 소고기뭇국, 미역국 등 국 종류도 다양합니다. 잘 나가는 메뉴로는 불맛을 더한 제육볶음과 오징어볶음이 있어요. 집에서 조리하는 것과는 다르다며 좋아하세요. 홍어무침, 해파리무침도 집에서 일상적으로 만들어 먹기는 어려운 메뉴라 인기가 많습니다. 겨울에는 팥죽. 호박죽이 별미이고, 동태탕, 뼈다귀탕처럼 뜨끈한 국물 요리도 추천합니다.
손님들이 은혜반찬을 꾸준히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맛의 비법이 궁금합니다.
일단 원재료가 좋아야 합니다. 남편이 15분 거리에서 사업자를 내고 직접 농사를 짓거든요. 배추, 무, 파, 감자, 오이, 가지 등 주요 밭작물을 믿을 수 있는 곳에서 바로 들여오니 맛이 좋을 수밖에 없어요. 마늘 하나를 써도 엄선하는데 제주도 양념마늘이 좋아서 꾸준히 사용하고 있어요. 어디 맡기지 않고 아침 6시 반부터 직접 조리하는 정성도 빼놓을 수 없죠. 기본 반찬은 물론 각종 김치도 직접 담급니다. 별미로 꼽히는 식혜도 직접 만들죠. 힘은 들지만 직접 만들어야 자신 있게 손님들에게 내놓을 수 있으니까요. 그 맛을 알아주는 손님들 덕분에 힘을 얻어 매일 쉬지 않고 만드는 것 같습니다.
기억에 남는 손님도 많을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주변 주민들만 찾아오시다가 이제는 제법 멀리서 일부러 찾아와주시는 분들이 늘고 있습니다. 옥천의 한 손님은 어머니가 암 투병으로 입맛을 잃은 중에도 저희 해파리무침만은 드셨다고 고마워하시더라고요. 저희 가게 음식이 전반적으로 조미료를 최소화해서 담백하거든요. 옛날 집밥 느낌이 난다며 입맛이 까다로운 어르신들도 자주 찾습니다.
가게에서 개별 판매하는 것뿐만 아니라 단체 고객을 대상으로 월별 식단표를 작성해 매일 반찬을 배달하는 서비스도 제공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소개해주세요.
5~6년 전부터 아들이 함께하면서 변화를 준 부분이에요. 5~20인 이하 사업장의 경우 급식 시설이 없고, 매번 밖에서 밥을 사 먹는 것도 일이거든요. 이들을 위해 국을 포함한 반찬 5가지를 구성해 아침마다 배달하고 있습니다. 병원, 한의원, 미용실 등이 주요 고객입니다. 매월 한 달 식단표를 올려두고 있고요, 거래처별로 좋아하는 반찬, 선호하지 않는 반찬을 체크해 두었다가 맞춤형으로 변형하기도 합니다. 4~5년 된 거래처가 많은데 반찬이 겹치지 않아 질리지 않고 밥을 먹을 수 있다고 좋아하십니다.
아드님이 함께하셔서 든든할 것 같습니다. 일찌감치 반찬가게를 일군 선배로서 어떤 부분을 강조하고 있나요?
첫째, 음식이 맛이어야 합니다. 이 기본은 꼭 지켜야 합니다. 둘째, 손님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일해야 합니다. 5천 원어치를 사든, 5만 원어치를 사든 똑같이 겸손한 태도로 맞아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신뢰를 중요하게 여겨야 합니다. 고객이 믿을 수 있는 가게로 꾸리면 실수를 하더라도 손님들이 먼저 이해해줍니다. 오래 갈 수 있는 비결이기도 하고요.
운영에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어떻게 이겨내셨는지 궁금합니다.
사실 가게를 접을까, 말까 고민한 적도 많습니다. 그런데 그럴 때일수록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게 되더라고요. 반찬가게는 변화를 줄 게 메뉴밖에 없잖아요. ‘더 맛있는 거를 만들어보자, 새로운 걸 선보이자’라고 연구하고 도전하면서 어려움을 잊은 것 같아요. 요즘 경기도 코로나보다 더 안 좋은 상황이거든요. 가만히 넋 놓고 있지 않고 메뉴 중에서 줄일 건 줄이고, 새로운 메뉴 개발에 힘쓰고 있습니다. 아이들, 젊은 사람 위주로 만들고 있고, 도시락도 구상해볼까 생각 중입니다.
앞으로의 계획, 목표가 궁금합니다.
아들이 합류해서 함께 운영하는 만큼 젊은 세대에 맞게 또 한 번 변화하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직화 메뉴 개발, 단체 주문 등도 아들의 아이디어였거든요. 믿고 먹을 수 있는 반찬가게로 대를 이어 오래오래 남는 게 꿈입니다.
· 주소 | 대전 대덕구 중리로64번길 16(중리시장 내)
· 전화 | 042-636-6395
· 영업시간 | 08:00~17:30(일요일 휴무)
· 주요메뉴 | 각종 반찬 및 김치, 국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