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공감共感

안경의 품격, ‘포칼라스’

조성호 대표

안경의 품격, ‘포칼라스’ <BR />조성호 대표

안경은 변신이다. 지구를 구하는 히어로 슈퍼맨은 까만 뿔테 안경과 함께 평범한 기자로 돌아간다. 안경은 역사다. 구한말의 동그란 안경부터 80년대 잠자리 안경, 알이 다시 커지는 2018년의 안경까지 안경은 시대를 대변하는 아이콘이다. 안경은 또한 미래다. 카메라와 내비게이션이 내장된 스마트 안경이 미래의 변화를 기대하게 한다.

28년 동안 안경과 함께한 1세대 안경디자이너 조성호 ‘포칼라스(4colors)’ 대표에게 안경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 젊은 날의 도전이자 언제든 한발 앞서게 하는 꿈, 새로움으로 이끄는 비전이자, 결국 사람으로 통하는 온기이기도 한다. 포칼라스가 품은 'Passion' 'Design' 'Vision' 'Humility' 4가지 색을 바탕으로 안경을 연구하고 만드는 조성호 대표. 그가 들려주는 흥미진진한 안경 이야기를 만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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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뽑기로 잡은 기회, 평생의 업이 되다

안경 디자인을 정석으로 연마한 1세대 안경디자이너 조성호 대표. 1991년부터 지금까지 오직 안경만을 바라본 그는 디자인부터 유통까지 안경산업 전반을 두루 경험한 산증인이다. 90년대 이후의 30년 안경 역사는 조성호 대표가 걸어온 길과 궤를 같이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운명처럼 다가온 안경이지만 첫 단추는 다름 아닌 ‘제비뽑기’ 덕분에 꿸 수 있었다.

“산업디자인을 전공했는데 졸업을 앞두고 학교로 서전안경의 추천서가 들어왔어요. 안경 디자인은 낯설었지만 입사 후 일본연수 기회가 주어진다는 조건에 4명 정도가 관심을 보였습니다.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 제비뽑기로 가리게 됐는데 제가 최종적으로 뽑혀 지금 이 자리에 있네요.(웃음)”

우연인듯 운명처럼 만난 안경은 이제 떼려야 뗄 수 없는 질긴 인연으로 굳어졌다. 조성호 대표는 1991년 졸업과 동시에 일본 후쿠이현 사바에시로 연수를 떠났다. 일본 안경 회사가 밀집한 지역으로 서전안경을 설립한 일본 안경기업 이시야마가 위치한 곳이기도 했다. 큰 기대를 품고 떠났지만 배움의 길은 만만치 않았다. 일본의 디자이너가 한국에서 온 초보 디자이너를 일일이 가르쳐주는 일은 없었다. 1년의 연수를 헛되이 보낼 수 없었기에 조대표는 짧은 일본어로 끊임없이 물어보며 안경 디자인을 배워갔다.

조대표는 당시 그렸던 도면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연필로 손수 도면을 그렸던 시절, 큼지막한 안경알이 90년 초반의 유행을 고스란히 소환한다. 90년 대 후반으로 갈수록 알이 작아지다 최근에는 다시 안경알이 커지는 추세다. 단순하면서도 가벼운 안경을 선호하는 고객들의 니즈에 맞춰 그는 오늘도 스케치를 하고, 도면을 그린다. 연필에서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손에 잡히는 도구가 달라졌을 뿐 최고의 안경을 위한 고민은 20대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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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펠탑과 바이올린이 담긴 안경, 세계를 매혹

사실 안경은 제법 단순하다. 귀에 거는 두 개의 다리, 중심을 지지하는 코 받침대 그리고 두 개의 알을 끼는 둥근 테가 전부이다. 안경의 탄생 이래 이 단순한 골격은 변함이 없다. 좀처럼 틀을 깨기 힘든 안경 디자인에 어떤 새로움과 개성을 새겨 넣을 수 있을까. 그에 답을 서전안경이 1992년부터 글로벌 시장을 겨냥해 론칭한 ‘코레이(Koure)’ 브랜드에서 엿볼 수 있다. 물론 조성호 대표가 디자인을 책임졌다.

“당시 중저가 안경들은 대부분 카피한 디자인을 선보였죠. 그만큼 독창적 디자인에 대한 갈증이 컸습니다. 코레이는 그 한계를 넘어선 독자적 고급 브랜드에요. 기본적으로 모든 제품에 각기 다른 모티브를 넣어 디자인했습니다. 기계적인 것에 영감을 받아 시계, 나사, 지퍼 등을 디테일에 접목했고, 튤립과 완두콩 등 자연의 아름다움도 담았죠. 프랑스에서 본 에펠탑, 그리스에서 본 아테네 신전을 안경다리에 새겼습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건 악기 시리즈에요. 선과 디테일이 아름다운 바이올린, 플루트 등을 형상화한 안경테를 디자인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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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레이의 안경은 숨은 그림을 찾듯 조대표가 숨겨둔 모티브를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디자인, 그러면서도 우아함을 잃지 않는 고급 안경으로 당시 북미와 유럽 시장을 매료시켰다. 일반 안경이 1.5~2달러에 수출될 때 코레이의 소비자가격은 400~500달러에 달했다.

“없어서 못 팔 정도였죠. 뉴욕 전시회에서 만난 한 유럽 바이어는 ‘내가 이 제품을 만나기 위해 여기까지 왔나보다’라고 감탄하며 바로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디자인으로 누군가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것만큼 뿌듯한 게 없죠. 감격하던 바이어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고객들의 뜨거운 반응은 조성호 대표가 지치지 않고 안경 디자인에 정진할 수 있는 힘이 되었다. 더불어 쫓아가는 디자인, 베끼는 디자인이 아니라 앞서가는 디자인, 나만의 디자인으로 승부를 봐야겠다는 다짐을 더욱 굳히게 했다.

포칼라스, 조성호 표 안경이 찾아오다

서전안경에서 차별화된 디자인을 선보인 조성호 대표는 퇴사 후 독립 안경디자인 회사를 설립하여 디자인의 가치를 높였다. 해외 명품 브랜드를 한국형으로 리디자인하는 역할을 통해 디자인뿐 아니라 유통과 안경 생산 시스템도 깊숙이 공부했다. 국내는 물론 해외 명품 기업의 러브콜에 부응하며 분주하게 안경업계를 누빈 그는 2014년, ‘포칼라스’로 다시금 독립을 꾀했다. 중저가 브랜드 ‘RCDesign’, 프리미엄 라인 ‘Raymond Cho’, 독일 고가 브랜드 ‘MUST by GRAFIX’의 수입 유통까지 3개 브랜드가 포칼라스의 핵심이다. 자체 디자인 브랜드는 조성호 대표의 영문 이름인 ‘레이먼드 조’에서 따온 것이다.

“RCDesign은 심플하고 가벼운 모델이 많습니다. 합리적 가격으로 편하게 착용할 수 있는 라인이죠. Raymond Cho는 100만원 대의 고가 라인입니다. 원목과 물소뿔 등 고급 소재를 사용하고 편안함과 고급스러움을 모두 담은 디자인을 만날 수 있죠. MUST by GRAFIX는 베타 티타늄 소재를 사용해 더 강하고 가벼워졌습니다. 나사와 용접이 없는 안경으로 A/S가 필요 없는 실용적인 안경이죠.”

설립 초기 MUST by GRAFIX의 수입 유통으로 기반을 다진 포칼라스는 올해 하반기부터 자체 브랜드인 Raymond Cho로 프리미엄 안경 시장을 전격적으로 공략할 계획이다. 물론 조성호 대표의 눈은 해외시장까지 뻗어있다. 국내 9,000여 개의 안경점 중 프리미엄 라인을 소화할 수 있는 매장은 300개 남짓. 내수 시장은 좁을 수밖에 없다. 중저가 시장은 이미 포화상태인 점도 조성호 대표가 프리미엄 라인에 승부를 건 이유다.

“인간을 생각하는 브랜드, 트렌드를 앞서가는 글로벌 브랜드로 Raymond Cho를 키우고 싶습니다. 디자인의 생명은 앞서가는 데 있습니다. 디자인이 정체되어 있다면 내가 끌고가겠다는 자신감 정도는 있어야하지 않을 까요. 유행을 주도한다는 생각으로 1~2년을 앞서가려고 합니다. Raymond Cho로 이를 구현해가야죠.”

오직 안경만 보고 걸어온 외길이다. 28년 동안 직접 연구하고 그린 여러 권의 도면과 스케치 파일에는 그의 역사이자 안경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이를 과거의 디자인이라 할 수 있을까. 조성호 대표는 20년 전에도 지금도 늘 미래를 디자인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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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는 안경? 세상을 담는 안경!

1세대 안경디자이너이자 현역으로 왕성하게 활동하는 디자이너로서 독보적 입지를 지니고 있는 조성호 대표. 디자인 감각을 놓치지 않기 위한 그의 필살기는 무조건 많이 돌아다니며 많이 보는 것이다. 최근에는 펫 전시회에 다녀왔고, 자동차, 오토바이 등 기계 전시와 디자인, 공예 전시도 즐겨 찾는다.

“디자이너는 생각의 폭이 넓어야 합니다. 오직 자기 주관만을 심는 건 순수 예술이지 제품 디자인이 아니에요. 안경점도 찾아가고, 지나가는 사람들도 보고, 유행하는 액세서리와 패션도 참고하여 소비자의 니즈에 맞는 디자인을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끊임없이 세상과 소통하며 변화를 보고 듣죠. SNS로 외국 친구들과 교류하는 것도 친교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안경 디자인 외길을 걸었지만 그의 눈은 세상 어디로든 열려 있다. 그는 현재 야자껍질을 활용한 안경테를 구상 중이다. 최근 전시회에서 야자껍질을 활용한 제품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다. 그의 사무실에는 해금 사진이 담긴 리플릿이 있다. 해금은 물론 거문고, 가야금, 대금 등 우리 전통 악기의 선을 응용한 안경테 디자인에 관심을 두고 있는 까닭이다. 문득 궁금하다. 실험과 도전을 멈추지 않는 조성호 대표에 ‘좋은 안경’이란 무엇일까?

“당연히 썼을 때 편안 안경이죠. 싸다고 안 좋고, 비싸다고 좋은 게 아니에요. 자신이 썼을 때 편안한 느낌이 드는 안경이 좋죠. 여기에 A/S가 필요 없는 안경이라면 더할 나위가 없습니다. 편안함은 디자인의 기본입니다. 동양인과 서양인의 두상이 다르기 때문에 인체공학적 접근을 통해 각 나라의 얼굴에 맞는 안경을 개발하고, 무게를 줄이기 위한 소재도 끊임없이 연구하죠.”

개성 있는 디자인이 빛을 발하기 위해서는 화려함으로 치장한 눈요기가 아니라 편안함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기본기를 잊지 않고 있는 조성호 대표는 디자인을 할 때 안경보다 사람을 더 생각한다. 그 치열한 고민 끝에 Raymond Cho의 중후하면서도 멋스러운 디자인이 하나씩 세상에 나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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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안경, 사람을 고민하다

현재 그가 몰두하고 있는 또 하나의 안경은 라이더용 스마트 안경이다. 카메라, 내비게이션, 스피커 기능이 탑재된 스마트 안경은 기능이 많은 만큼 무겁고 투박해지기 쉽다. 기능을 살리면서도 무게를 최소화하고 착용함이 좋으며 모양까지 멋스러운 스마트 안경을 어떻게 구현해야 할까? 결코 쉽지 않은 미션이지만 조성호 대표는 오히려 신이 난 모습이다. 시대를 앞선 안경을 디자인하는 설렘이 녹아 있다.

“미래 사회를 떠올리면 첨단 기술이 이끄는 빠르고 삭막한 모습이 그려지기 쉽잖아요. 그럴수록 디자인은 인간 중심적으로 따뜻하고 감성적으로 가야한다고 생각해요. 디자인뿐 아니라 기업 가치도 마찬가지입니다. 포칼라스의 안경을 구입하면 이웃과 나눌 수 있는 가치가 커지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어요. 미니버스에 시력측정 기구와 안경 제작 세트를 싣고 소외된 지역의 아이들과 어르신들에게 안경을 선물하면 어떨까요? 괜찮나요?”

안경은 세상을 더 선명하게 보게 해준다. 흐릿함이 걷힌 세상에는 지저분한 모습도 아름다운 모습도 더 또렷하게 공존할 터다. 하지만 조성호 대표는 기대해본다. 안경으로 더 따뜻한 세상을 더 선명하게 만날 수 있기를 말이다. 그것이 포칼라스가 근사한 안경과 함께 꿈꾸는 근사한 세상이다. 나무의 부드러움과 물소뼈의 견고함이 어우러진 포칼라스의 신제품이 특별해 보이는 건 그 안에 녹아든 은은한 온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포칼라스의 안경은 누군가의 자부심이 되기에 충분해 보인다.

글 강현숙 / 사진 박남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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