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 시절부터 늘 일상이었던 가게를 이어받는 일은 고민할 필요도 없이 당연했다는 장재민 대표. 35년 전통과 원칙을 이어가면서 시대에 맞는 변화를 고민하겠다는 그의 출사표는 ‘백년가게’를 향한 기대와 믿음을 높인다.
천호동 보쌈하면 역시 장원보쌈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가장 큰 유산은 음식과 손님을 대하는 마음과 태도였어요.”
천호동에서 ‘보쌈’하면 가장 먼저 손꼽히는 ‘장원보쌈&족발’에 들어서면 메뉴판보다도 먼저 눈에 띄는 대형 액자가 있다. ‘내가 만들고 있는 이 음식은 사랑하는 내 가족이 먹는다’. 주방 입구에 걸린 이 글귀는 1986년, 조덕례 1대 대표가 지금의 장원보쌈&족발을 창업한 순간부터 걸어둔 원칙이자 신념이다. 어머니에 이어 2대째 장원족발을 운영하는 장재민 대표는 최고의 스승으로 단연 어머니를 꼽는다. 음식을 만들 때의 깐깐함, 손님을 대할 때의 유연함, 직원을 대할 때의 책임감까지 어머니의 말씀과 태도 하나하나는 가게를 이끄는 교본이 되었다.
“스물여덟 살 때부터 14년 동안 어머니와 함께 가게를 이끌다가 올해 처음으로 혼자 운영하게 되었어요.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대걸레를 밀고 다니며 어머니를 도왔거든요. 청소하고 놀다가 가게 의자에서 자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손님들이 들어와서 옆에 앉아서 식사했어요. 그때 단골들이 지금까지 찾아주시죠.”
어머니가 최고의 스승이에요
2대째 ‘장원보쌈&족발’을 운영하고 계십니다. 어머니께서는 처음 어떻게 가게를 일구셨는지 창업 스토리가 궁금합니다.
보쌈은 궁중음식이 대중화를 거쳐 널리 퍼진 사례인데요. 어머니가 스물여덟에 서울로 올라와 처음 일한 곳이 보쌈의 원조 격인 어르신의 식당이었어요. 처음에는 설거지부터 시작했는데 어머니의 솜씨가 눈에 띄었는지 주방장을 3년 하면 가게를 내주겠다고 제안하셨다고 해요. 그 당시에는 지금의 직영점 개념으로 원조 가게가 직접 가게를 내도록 도와주고 상호를 같이 썼거든요. 원조 어르신이 가게 보증금도 내주고, 거래처도 모두 밀어준 덕분에 1986년, 천호동에 첫 창업을 할 수 있었죠. 지금 가게의 바로 옆자리에요. 처음에는 장군보쌈으로 시작해 원조 가게의 이름이 바뀌면서 함께 장원보쌈이 되었죠. 원조 가게에서 일하신 분들이 창업하면 모두 같은 이름을 썼기에 ‘장원보쌈’은 아마 대부분 30~40년 전통을 자랑한다고 보면 됩니다.
어머니가 맨손으로 일군 가게가 중소벤처기업부 인증 ‘백년가게’로 선정되었습니다. 소감이 남다를 것 같습니다.
어머니가 치열하게 이뤄놓은 삶은 인정 받는 것 같아 감격스러웠습니다. 제가 3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저희 3남매를 키우기 위해 시작한 일이었는데 혼자서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겠어요. 36년 동안 명절에도 쉬지 않고, 새벽에도 손님을 기다리면서, 세 시간만 자고 일어나 가게를 지키던 어머니였어요. ‘백년가게’ 타이틀은 올해 은퇴를 한 어머니에게 선사하는 의미 있는 결실이자 저의 새로운 시작을 향한 응원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머니가 잘 쌓아온 업적을 흔들림 없이 이을 수 있도록 이제부터는 제가 열심히 해야겠다는 각오를 다져봅니다.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가장 큰 배움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손님의 많고 적음에 흔들리지 않고 늘 원칙을 지키는 자세입니다. 이를테면 보쌈김치는 당일 아침에 담그는 게 창업 때부터 지금까지의 룰이고, 반찬도 마찬가지예요. 11시 40분 오픈인데 11시 30분에 반찬이 완성될 수 있도록 시간을 맞춥니다. 손님들이 갓 조리한 음식을 드실 수 있도록 말이죠. 완제품을 사용하지 않고 모두 직접 조리하는 고집도 고수하고 있고요. 어머니께서 늘 마진율보다 손님이 맛있게 드시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하셨어요. 계산부터 따지기 시작하면 손님을 바라보는 눈빛이 달라진다고요. 그런 신념과 원칙을 자연스럽게 배우게 됐습니다.
요즘 보쌈·족발 전문점이 다양해졌는데요. 다른 가게와 차별화되는 맛의 비결도 궁금합니다.
족발과 보쌈 고기를 모두 국내산으로 쓰고, 족발은 살이 많은 앞발만 사용합니다. 국내산만 쓰는 보쌈·족발집은 많지 않을 거예요. 국내산 고기의 육즙과 끝 맛의 고소함은 확실히 다릅니다. 또 보쌈에 곁들어지는 보쌈김치의 재료도 모두 국내산입니다. 믿을 수 있는 재료에서 좋은 맛이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손님들도 그 차이를 아는 분이 많더라고요. 국내산 재료로 깔끔하게 조리한다는 이미지는 수년간 쌓아온 장원보쌈&족발의 자존심이자 정체성입니다.
오랜 단골도 많을 것 같습니다.
약속을 잡을 때 ‘장원보쌈 앞에서 보자’할 만큼 천호동에서만 36년 한 자리를 지켰습니다. 출발은 지금 가게의 옆에서 했는데 새 건물이 올라가면서 옮겼거든요. 연애할 때 와서 이제는 자녀들과 함께 오시는 분, 어릴 때 부모님과 함께 왔다가 이제는 자녀를 데리고 오시는 분 등 단골이 70% 정도에요. 옛날 맛 그대로라고 해주시면 뿌듯하고 감사하죠. 저도 단골손님의 취향을 파악해 맞춤형으로 세팅을 합니다. 새우젓을 안 드시는 분, 쌈을 안 드시는 분, 김치를 잘 드시는 분 등 좋아하는 반찬과 안 좋아하는 반찬을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차려내지요. 손님들에게 장사를 하는 게 아니라 추억을 공유한다는 생각으로 가게를 이끌고 있어요. 지역 분들과 맛 좋은 음식으로 좋은 시간을 공유하는 거죠.
보쌈·족발 전문점 창업을 고민한다면 어떤 부분을 신경 써야 할까요?
저도 계속해서 배워가는 중인데요. 중요한 것은 음식을 다양하게 먹어보고 내 입맛의 기준을 가지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확실한 레시피를 갖춘 다음에는 그저 열심히 하는 거죠. 여기에 손님을 존중하는 마음이 더해지면 좋을 것 같아요. 어릴 때부터 손님 앞에서 무릎을 꿇고 집중해서 대화하는 어머니를 많이 봐 왔어요. ‘손님들이 나를 키우고 우리 가족을 키운다’라며 손님 앞에서는 절대 자존심을 세우지 말고, 손님이 음식을 마음에 들지 않음에 마음 아파하라고 말씀하셨거든요. 음식점을 하다 보면 다양한 손님들을 마주하게 되는데요. 그럴 때마다 나를 낮추고 손님의 입장에서 헤아리는 마음을 가져야 더 성장하고 오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요식업계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습니다.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계획, 앞으로의 목표를 말씀해주세요.
코로나19로 손님도 줄고, 직원 규모도 대폭 줄면서 오히려 제가 하나하나 챙길 수 있는 시간이 생겼습니다. 이제 코로나19 이후를 대비해야 할 때인데요. 우선 3~4곳의 직영점 오픈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체인점은 부담스럽고, 맛과 품질을 유지할 수 있는 소규모 형태로 오전에 이곳에서 음식을 만들어 각 지점에 제공하는 행태를 구상하고 있습니다. 백년가게로 선정된 만큼 가업을 잇기 위해 단단한 발판을 단단하게 다지도록 하겠습니다.
장원보쌈&족발
· 주소 : 서울 강동구 구천면로 196
· 전화 : 02-470-8555
· 영업시간 : 11:40~02:00(현재 코로나로 22:00까지 운영), 연중무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