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공감1

원조 제빵왕,
직지글빵으로 승부하다

청주 맥아당제과 나병일 대표

전주, 부산, 서울, 광주, 부천 그리고 청주. 초등학교 졸업 후 꿈꾸던 중학교 진학이 어려워진 소년은 고향 임실을 떠나 무작정 도시로 향했다. 숙식이 가능하다면 어떤 일이든 하리라 다짐한 그에게 우연인지 운명인지 전주 시내의 ‘풍년제과’가 눈에 띄었다. 1977년, 이제는 명인의 자리에 오른 청주 맥아당제과 나병일 대표가 처음으로 제빵에 발을 디딘 순간이었다.

제빵왕, 빵에 인생을 걸다

“먹여주고 재워주면 그걸로 족하다고 생각했어요. 1년 넘게 무보수로 일하고 그 후부터 월급 5천 원을 받기 시작했는데 당시 저에게는 큰돈이었어요. 풍년제과에서 3~4년 일을 배우고, 선배를 따라 부산에도 갔다가 서울로 올라와 한국제과고등기술학교를 수료했습니다. 서울 3대 베이커리로 꼽히던 나폴레옹제과점에서 1년 남짓 일하다 풍년제과 부공장장으로 다시 전주에 내려와 첫 창업까지 이루게 됐죠.”

숨 고를 틈 없이 달려온 시간, 전주 송천초등학교 앞에 드디어 자신만의 가게인 ‘송천제과’를 오픈한 나이가 고작 스무 살. 나병일 대표가 10대 시절을 얼마나 치열하게 달려왔는지, 맨몸으로 얼마나 성실하게 단련해왔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하지만 첫 창업은 시작에 불과했다. 서울로 올라와 사당동에 크리스탈제과를 창업하고, 가족과의 시간을 갖기 위해 당시 유행이던 비디오대여점에 잠시 발을 담갔다 청주로 자리를 옮겨 만난 것이 지금의 맥아당제과다. 그의 치열한 삶은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의 모델이 되고 실제 대역으로 함께하기도 했다. 유명세에 기댈 수도 있었지만 나병일 대표는 오히려 누구도 따를 수 없는 자신만의 빵을 개발하는 기회로 삼았다. 충주를 대표하고 나아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직지글빵’은 나병일 대표의 꿋꿋한 자존심으로, 지역사회와 우리 문화를 향한 애정 덕분에 탄생할 수 있었다.

직지글빵, 나만의 브랜드로 승부

그동안 지나오신 길을 간략히 짚어만 봤는데도 이야기가 깁니다. 여러 차례의 창업을 거쳐 지금의 맥아당제과에 안착하셨습니다.

시행착오도 많았지요. 전주에서 첫 가게를 열 때는 전기구이 가게를 무작정 인수했어요. 이미 있는 설비를 어쩌지 못해 빵집과 통닭 전기구이를 함께하기도 했죠. 청주에서는 위치나 규모 면에서 한눈에 반해 1981년 문을 연 맥아당제과를 1993년 인수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었어요. 당시 청주에서는 빵집에서 우동과 쫄면을 같이 파는 게 유행이었거든요. 저는 제빵 전문가니 빵만 팔겠다고 나섰다가 망할 뻔했죠.(웃음) 저도 한동안은 우동과 쫄면을 함께 팔며 제과점을 유지해 나갔습니다. 유동인구가 많은 터미널 옆에 위치한 장점이 있었는데 터미널이 이전하면서 또 한 번 위기가 닥쳤는데요. 새로운 판로를 개척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입지 경쟁력이 떨어진 제과점을 살리기 위해 어떤 대안을 찾으셨나요?

제과점에서는 즉석빵 판매를 유지하고, 대량 생산을 기반으로 한 학교급식으로 발을 넓혔습니다. 청주 시내에서는 제조업 허가가 나지 않아 외곽에 땅을 사서 공장을 지었는데, 주변 환경이 열악해 3년 만에 접기도 했어요. 대신 관을 설득해 맥아당제과 옆에 제조업 허가를 겨우 얻어 안정적으로 급식 납품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 꽃, 케이크, 반지를 선물 세트로 구성해서 배달하는 서비스와 협업해 케이크의 안정적인 판로도 뚫게 되었습니다.

40년 넘게 빵을 만드셨는데요 여전히 노력하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꼭 지키는 신념이 있나요?

‘기본에 충실하자’는 자세로 한결같이 임하고 있습니다. 빵의 기본은 반죽이거든요. 지금도 매일 새벽 3~4시에 직원들보다 일찍 출근해 반죽을 직접 만듭니다. 계절이나 날씨의 미묘한 변화에 따라 반죽하는 방법도 달라지거든요. 기온이 높은 여름에는 얼음을 넣고, 겨울에는 미지근한 물을 활용하죠. 보이지 않는 기본 과정을 충실히 할 때 빵 맛을 지킬 수 있습니다.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의 모델이자 대역으로 활약하신 이력도 특이합니다.

저에게 시련과 기회를 동시에 안겨준 경험이었어요. 2010년 드라마 제작사에서 연락이 와서 제 인생사를 들려주고, 손 대역으로 촬영도 함께 했어요. 제가 만든 빵을 공급했고요. 그런데 중반 정도부터 대기업이 합류하면서 제 노력과 흔적이 지워지더라고요. 저는 ‘제빵왕 김탁구’라는 타이틀을 전혀 활용할 수 없게 되었고요. 마음의 상처를 입고 우울증까지 찾아온 시련 속에서 결국은 남들이 따라 할 수 없는 나만의 브랜드가 중요하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게 ‘직지글빵’이에요.

청주를 대표하는 문화유산인 ‘직지’를 모티브로 한 ‘직지글빵’은 맥아당제과의 대표 제품이자 지역을 대표하는 제품으로 우뚝 섰습니다. 개발 과정이 궁금합니다.

천안하면 호두과자, 경주하면 황남빵이 떠오르듯 청주를 대표할 수 있는 빵을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인 직지(直指)는 청주를 대표하는 유네스코 기록문화유산입니다. 직지빵을 만들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시청에 제안했고 다행히 시에서도 적극적으로 지원해주었습니다. 직지빵은 영양, 문화, 맛을 모두 담기 위해 노력했어요. 우리밀과 유기농보리쌀 반죽에 미숫가루까지 넣어 고소함을 더했고, 팥소와 호두를 넣어 글자 모양을 살려 찍어냈습니다. 직지빵은 2011년 첫 출시 후 꾸준히 사랑받고 있어요. 청주 직지의 날에는 직지가 1377년 간행된 날을 기념해 시민들에게 1377개의 빵을 증정하기도 했습니다.

직지글빵과 더불어 청원생명쌀빵도 대표 제품입니다. 지역사회와의 협업이 인상적입니다.

청원생명쌀빵의 경우 농업기술센터에서 먼저 의뢰가 와서 개발한 빵입니다. 우리밀과 쌀가루, 블루베리를 갈아서 반죽을 만들어 맛, 모양, 건강을 모두 챙겼습니다. 청주에 뿌리를 내린 지 30년 가까이 되는데요. 자연스럽게 지역의 문화와 사람들에 관심이 갔습니다. 특히 나만의 것을 만들기 위해서는 가까운 곳에서 아이디어를 얻는 게 중요하지요. 지역사회의 지원을 많이 받은 만큼 저소득층 지원 사업이나 재난 피해가 있을 때 빵을 만들어 기부하는 활동을 꾸준히 잇고 있습니다. 코로나19 상황에서 가장 힘들게 버티는 의료진을 위해 1,500개의 빵을 기부하기도 했고요.

지역 제과점이 경쟁력을 가지기 쉽지 않은 환경입니다.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계신가요? 제빵·제과 창업을 고민하는 분들에게 조언도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인건비도 임대료로 많이 올라 동네 빵집을 운영하기가 쉽지 않은 게 사실이지요. 이때는 식빵부터 케이크, 샌드위치까지 모든 종류의 베이커리를 취급하기보다는 전문점으로 승부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최근에는 빵만 팔지 않고 카페와 접목한 베이커리 카페의 성장세도 돋보이고요. 첫 창업을 한다면 너무 서두르지 말고 주변 상권이나 환경을 면밀하기 파악하고 시작하길 바랍니다. 무엇보다 돈이 목적이 아니라 빵 만드는 걸 즐길 수 있었으면 해요. 고비가 올 때마다 그것을 넘을 힘이 되거든요.

앞으로 이루고 싶은 꿈과 목표가 궁금합니다.

중소벤처기업부 인증 백년가게에 선정된 것을 발판으로 더 멀리 성장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중국, 베트남에서도 반응이 좋아 농업법인을 만들어 수출판로를 개척하고 있고, 현재 있는 곳이 개발되면 자리를 옮겨 베이커리 카페로 확장하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전국 각지의 문화와 연계한 빵을 개발하고 싶습니다. 지역 특산물과 문화를 녹여낸 특색있는 빵으로 지역 제빵 전문가가 경쟁력을 가지고 함께 성장하길 바라는 바람입니다.

맥아당제과
· 주소 : 청주시 서원구 사운로 88
· 전화 : 043-276-4238
· 영업시간 : 매일 08:00~22:00, 일요일 09:00~17:00(명절휴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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