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공감2

멸치로 잇는 4대 가업,
백년을 내다보다

여수 금성상회 강일식 대표

바다와의 오랜 인연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남해에서 여수까지 다도해의 절경을 삶의 터전으로 일군 진짜 바다 사나이들. 여수 금성상회 강일식 대표는 멸치 조업으로 시작해 중도매와 판매점까지 일군 가업을 4대째 이어가며 바다 곁을 지키고 있다. 강대표에게 멸치를 잡던 증조부의 사연과 여수로 넘어와 처음 금성상회를 차린 할아버지의 일화는 자신의 뿌리이자 자부심을 일깨우는 이야기이다.

여수수협 인증 멸치 중도매의 길

“증조부님께서 남해에서 정치망 멸치잡이를 하셨어요. 할아버지도 함께 조업하시다가 어업은 사촌에게 넘겨주고 여수로 넘어와 금성상회를 열었습니다. 생산자에게 물건을 받아 물건을 팔아주는 위탁업을 시작한 것이지요. 1957년, 할아버지가 20대 때의 일입니다. 그러다 멸치 위탁업을 수협에서 한꺼번에 관리하게 되자 중도매인 자격을 얻어 경매 입찰 참가자로 변모했습니다. 뒤를 이어 아버지가 1970년부터 함께 하셨고, 저는 곁에서 조금씩 돕다 2015년부터 본격적으로 뛰어들었죠.”

바다에서 조업한 수산물이 우리 식탁에 오르기까지 거치는 유통의 맨 첫 단계에 중도매인이 자리한다. 수협에서 어민들의 수산물을 한데 모아 관리하면, 중도매인이 경매를 통해 입찰을 받아 전국 거래처로 유통하는 시스템으로 운영되는 것이다. 멸치 어장이 좋기로 소문난 전라남도 해역의 멸치가 여수수협에 모이면, 원하는 상품을 최적으로 가격으로 입찰하는 게 중도매인의 역량. 강일식 대표는 이제야 좀 알겠다고 웃어 보인다.

“처음에는 시행착오도 많았죠. 하지만 저에게는 가장 든든한 스승인 아버지가 계시잖아요. 열심히 뛰고, 부딪히면서 멸치 보는 눈도, 입찰하는 요령도 배웠지요. 중도매인뿐 아니라 ‘여수 멸치어가’라는 브랜드를 론칭해 멸치는 물론 각종 건어물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제법 쌀쌀해진 날씨이지만 경매가 이뤄지는 여수수협 서부지점 경매장은 언제나 뜨겁다. 어느덧 4대째, 멸치에 있어서만큼은 최고가 되고 싶다는 강일식 대표는 오늘 아침도 일찌감치 경매장으로 향한다.

여수 멸치어가, 명품으로 승부하다

4대째 가업을 잇고 있습니다. 30대 후반에 멸치중도매인의 길로 뛰어들었는데 계기가 있었나요?

아버지께서 멸치 중도매인으로 탄탄하게 자리를 잡고 계셨는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휘청하셨습니다. 일본 수출이 직격탄을 맞은 것이죠. 아버지께서 혼자 감당하며 수습하려다 스트레스에 뇌출혈까지 오게 되었죠. 업을 아예 접을 수는 없어 어머니가 겨우 소매점을 열어 명맥을 이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가업을 잇는 것을 깊게 고민했습니다. 시대가 빠르게 변하는데 두 분이 이끌어가기는 벅차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마침 소상공인진흥공단에서 가업승계 아카데미를 열기에 교육을 받았는데, 가업을 잇는다는 게 큰 메리트가 있더라고요. 확신이 생기자 회사를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뛰어들었습니다.

수산물 중도매인은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하나요? 하루 일과 중심으로 소개해주세요.

중도매인은 유통의 첫 단계입니다. 경매로 물건을 사들여 전국 도매 거래처에게 보내고, 수출도합니다. 생산자의 건멸치를 수협이 사들여 창고에 쌓아두면 중도매인은 경매 하루 전이나 경매가 시작되기 전인 아침 일찍 물건들을 검품하며 원하는 물건을 찾습니다. 오전 9시 여수 수협서부지점 경매장이 열리면 점찍어둔 물건의 입찰에 참여하지요. 낙찰된 물건은 1차적으로 부산, 포항, 전주, 제주의 주 거래처에 도매물량으로 나가고, 저희가 직접 ‘여수 멸치어가’ 브랜드로 소매 판매하는 상품을 따로 정리해두지요. 아버지가 한창 활약하실 때는 하루에 억 단위 물건이 거래되기도 했는데, 지금은 많이 줄어 많으면 하루 4~5,00만 원 정도의 물건이 거래됩니다. 마음에 드는 물건이 없으면 몇십만 원으로 끝나는 경우도 있지요.

아버님께 배운 가장 큰 가르침은 무엇인가요?

아버지는 직접 부딪히며 몸으로 익힌 분이라 체계적으로 가르치는 걸 어려워하세요. 그래서 역으로 질문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두 물건이 비슷해 보이는데 왜 경매 단가가 다르냐?’ ‘이게 1만 2,000원 가격인 이유가 있느냐?’ 등 꼬치꼬치 물으며 배워갔습니다. 사실 실수도 많이 하고 혼도 많이 났어요. 그럼에도 답을 미리 알려주는 게 아니라 ‘일단 네가 좋아보이는 걸 사라. 파는 건 내가 해주겠다’고 하면서 스스로 성장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셨죠.

중도매인으로서 대표님만의 경쟁력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중도매인마다 입찰받는 물건의 성격이 다릅니다. 저희는 가격 중심이 아니라 품질 중심입니다. 좀 비싸더라도 질을 먼저 고려해 물건을 입찰하는 게 차별화 포인트입니다. 때문에 물건을 사든 안 사든 늘 경매장에 갑니다. 초기에는 가상 입찰을 하며 감을 익혔고, 경매에 나오는 제품을 보고 또 보느라 아침에만 무려 7,000보를 걷는 날도 있었습니다. 태도 면에서 제일중요 시 여기는 건 겸손이에요. 이제 조금 눈에 익다고 자신만만해서 검품을 게을리하거나 쉽게 확신을 가지는 순간 실수가 나옵니다. 1,000원 만 차이가 나도 물량이 많으면 하루 몇백만 원의 손해로 돌아올 수 있거든요. 성실한 검품과 겸손한 자세를 경쟁력으로 지니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여수 멸치어가’라는 자체 브랜드를 만들어 소매점 판매 경쟁력도 높이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쓰러지셨을 때 대안으로 시작했는데 지금은 온라인 스토어에서도 평가가 좋은 브랜드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전라남도 해역의 멸치어장이 좋아 멸치가 고소하고 육질도 단단하고 맛있거든요. ‘멸치가 너무 맛있어서 다시 왔다’ ‘이런 멸치는 처음 먹어본다’ ‘좋은 물건 주셔서 고맙다’는 손님들 말씀에 보람을 느끼지요. 멸치뿐만 아니라 미역, 김, 새우, 오징어 등 건어물을 종합 판매하고 있습니다. 중도매인끼리 네트워크가 형성되어 있다 보니 물건의 품질만큼은 자신 있습니다.

업을 이끌면서 꼭 지키는 원칙, 철칙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아버지와 어머니 두 분 모두 ‘당장의 이익을 위해 눈속임을 하면 안 된다’고 늘 강조하셨습니다. ‘무조건 정직하게’가 제 철칙입니다. 좋은 건 좋다고 하고, 질이 떨어지면 솔직하게 말을 해줍니다. 바다 수산물은 생산하기 전까지 품질을 예측할 수 없거든요. 작년보다 크기가 작다, 올해 조업량이 적어 비싸다, 한 달 정도 기다리면 더 좋은 상품이 나올 것 같다 등 정확한 정보를 손님들에게 공유합니다. 특히 제품의 질에 비해 높은 가격을 부른 뒤 눈치를 보면서 5,000원, 1만 원씩 깎는 장사는 정말 하고 싶지 않아요. 품질에 맞는 적정한 가격을 붙이고 대신 에누리가 없는 편이 더 좋다고 생각해요. 스스로 가치는 깎지 말아야죠. ‘여수 멸치어가’는 정직하게 물건을 파는 곳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주고 싶습니다.

‘백년가게’로 선정된 소감과 함께 앞으로의 각오를 부탁드립니다.

할아버지가 64년 전에 일군 업을 이끈다는 긍지를 가지고 ‘백년가게’ 타이틀을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본격적으로 가업을 이으며 목표한 바가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쓰러지고 난 후 혼란했던 사업 살림을 살리는 게 1차 목표, ‘여수 멸치어가’의 온라인몰 진출이 2차 목표였죠. 두 목표는 이뤘고, 3차 목표는 아직 다듬고 있는 중입니다. ‘여수 멸치어가’의 브랜드 경쟁력을 강화하고, 더 다양한 마켓과 몰에 진출하는 게 큰 골자가 되겠지요. 궁극적으로는 소비자가 믿고 먹을 수 있는 멸치와 건어물을 유통, 판매하는 금성상회가 되는 것입니다. 잘 이끌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여수 금성상회(여수 멸치어가)
· 주소 : 전남 여수시 여객선터미널길 24 여수수산시장 내
· 전화 : 061-662-6762
· 영업시간 : 07:00~20:00(일요일 기준 둘째, 넷째 화요일 휴무)
· 주요메뉴 : 멸치, 김, 새우, 오징어 등 건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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