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을 이어온 식당의 비결을 과연 주방에서만 찾을 수 있을까? 시흥동에서 가장 오래된 숯불갈비 전문점인 ‘대호정’은 1982년부터 한 자리를 지켜왔다. 푸짐한 옛날식불고기와 담백한 돼지갈비가 어우러진 한 상은 군더더기 없이 정갈하다. 좋은 고기임을 증명하듯 부드러운 육질과 간이 세지 않아 담백한 감칠맛은 젓가락질을 계속하게 한다. 그 맛만으로도 충분히 훌륭한 맛집이지만 정작 눈길을 끄는 건 따로 있었다.
40년 한 자리, 정갈한 갈빗집
홀과 주방 그리고 손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세심하게 돌보는 임순자 대표가 그 주인공이다. 상차림을 순발력 있게 챙기고, 정겹게 손님을 맞는 임순자 대표의 온화한 목소리는 갓 지은 밥보다 더 따스하게 다가온다. 주변의 많은 가게들이 사라졌다가 새로 생겨나는 중에도 흔들림 없이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비결은 그녀의 넉넉한 인정 때문이 아니었을까.
“찡그리고 들어온 사람도 나갈 때는 웃게 해야 한다는 게 제 목표에요. 이곳을 찾은 이상 ‘아 잘 먹었다’ ‘아 행복하다’ ‘이 집 참 잘한다’라는 말은 나오게 해야죠. 맛있게 상을 차리고, 기분 좋게 서비스를 하면 저도 기분이 좋거든요.”
그 진심이 통한 덕분인지 1년 단골이 10년 단골, 30년 단골이 되어 다시 찾는다. 훌쩍 장성한 손님을 맞으며 ‘언제 이렇게 컸냐?’고 허물없이 반기는 식당이라니. 변함없이 자리를 지켜온 ‘백년가게’의 진가는 이런 온기에서 나오는 게 아닐까 싶다.
한번 인연은 오래오래
40년째 대호정을 운영 중이십니다. 어떻게 식당을 개업하게 되었는지 창업 스토리가 궁금합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1974년부터 남편과 슈퍼마켓을 운영했어요. 우리나라 최초의 슈퍼마켓 체인인 ‘한남슈퍼’였는데, 한쪽에는 정육점이 있고 한쪽에는 쌀가게가 있는 제법 큰 규모의 슈퍼였죠. 그런데 1982년 남편이 딱히 상의도 없이 별안간 문을 닫아버렸습니다. ‘뭐 하려고?’라고 물었더니 식당을 할 테니 저보고 카운터에만 앉아 있으라 하더라고요. 그렇게 식당으로 수리를 하는데 돈이 부족했어요. 다행히 친정아버지께서 1,000만 원이라는 큰돈을 대주셨어요. 그뿐인가요. 소하동 인근 밭에서 직접 기른 파, 배추, 무, 고추 등 식자재도 공급해주셨죠. 아버지의 든든한 지원 덕분에 무사히 가게를 열어 지금까지 쭉 이어오고 있습니다.
대표님이 처음부터 주방을 책임진 게 아니었다니 의외입니다. 지금은 손수 주방을 진두지휘하시잖아요.
맛에 대한 까다로운 감각은 있었어요. 외할머니께서 안동 권씨 시제를 지내는 집이었고, 할머니도 동네에서 잔치가 열리면 주축이 되어 음식을 장만하셨던 분이었거든요. 그러다 시집을 오니 시댁이 대대로 양반가에요. 음식 재료나 맛에 대한 안목이 높아졌을 수밖에 없죠. 두부, 다식, 떡도 다 집에서 직접 만들었으니까요.
다행히 식당을 시작할 때는 전문 주방장이 맛을 잘 잡아줬습니다. 그런데 IMF로 가게 사정이 어려워지자 주방장이 먼저 자신의 월급을 주고 운영하긴 힘들 것 같다며, 직접 가르쳐줄 테니 나보고 주방을 맡아보라 권하더라고요. 그렇게 갈비를 재고, 불고기 재는 걸 다 배워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습니다. 얼마나 고마운 인연이에요. 당시 주방장 명의로 적금을 10만 원씩 따로 들고 있었는데 독립해서 가게를 낼 때 TV와 냉장고를 선물했죠. 지금까지도 오고 가며 가깝게 지내고 있어요.
불고기, 돼지갈비, 꽃등심 등이 주요 메뉴입니다. 40년간 맛과 메뉴를 꾸준하게 유지해온 비법이 궁금합니다.
일단 재료가 좋아요. 슈퍼마켓을 운영할 때 정육점에서 매일 소 한 마리, 돼지 두 마리를 팔 정도로 장사가 잘 되었는데요. 그때 직원이 성공해서 큰 고깃집을 운영하고 있어요. 그곳에서 제일 좋은 고기를 떼다 쓰고 있습니다. 고기를 직접 손질하고, 장이며 김치, 기본적인 양념을 모두 직접 만들어 사용해요. 자극적이지 않고 정말 어머니의 손맛 같은 속이 편한 음식을 차려내죠.
주변의 오래된 식당들이 IMF를 겪으며 한 번, 구제역 파동을 겪으며 또 한 번 버티지 못하고 사라졌어요. 그 뒤에 새로 생긴 가게들은 대부분 공장식 음식을 차려내더라고요. 각종 재료와 양념을 대량으로 납품받는 형태이다 보니 깊은 맛이 덜하죠. 저희는 오랜 시간을 버틴 식당으로서 제대로 된 손맛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요식업의 판도도 빠르게 변했습니다. 맛의 원칙을 지키면서도 시대에 맞게 변화한 부분이 있을까요?
늘 부지런히 움직였어요. 초창기에는 가락시장까지 힘든 줄도 모르고 오갔고, 좋은 강의가 있으면 버스를 4~5번 갈아타고라도 들었어요. 강의를 들으면 새롭게 배우고 깨닫는 게 많아 정말 신이 났죠. 돌아오는 길에 대부분 잊어버리지만 신선한 자극은 오래 남더라고요.(웃음) 특히 오징어쌈밥은 본죽 김철호 회장이 컨설팅을 할 때 만나 고안한 메뉴에요. 창립 21주년을 기념해 고객 사은행사를 홍보한 전단지를 지금까지 가지고 있는데요. 이것도 김호철 회장이 아이디어를 내 만들어줬습니다. 당시만 해도 파격적인 중국 해외여행권 2매를 1등 사은품으로 내걸었죠. 고객 서비스나 유행은 시대에 맞게 쫓아가려고 노력해요. 젊은 사람들과도 허물없이 소통하면서 말이죠.
한 자리에서 40년을 일군 식당이니 오랜 단골도 많을 것 같습니다.
열 살 꼬마가 이제 오십이 되어 찾아온다니까요. 오래 있다 보니 손님과도 인연이 깊어져요. 우리 집 막내가 어릴 때 가게에서 칭얼거리면 번쩍 안고 나가 장난감도 사주고, 과자도 사주던 총각이 있었어요. 그게 고마워 브랜드 트레이닝복 한 벌을 선물하니 그렇게 고마워하더라고요. 그런데 최근 간이 안 좋다는 소식을 듣고는 남편이 의사 친구를 소개해줘 빨리 수술을 잡아 무사히 치료하게 됐어요. 좋은 인연은 이렇게 오래 간답니다. IMF로 한창 어려울 때는 ‘이렇게 세금 내고 가게 운영하는 자영업자가 진짜 애국자’라고 말해주는 손님 덕에 기운을 낼 수 있었고, 최근 코로나19 시국에는 ‘무너지지 마세요’ ‘힘내세요’라는 한마디에 정말 힘을 내고 있어요. 해외로 떠나셨던 분들이 한국에 오면 그리웠다고 꼭 들러주시니 이 자리를 지킬 수밖에 없지요.
중소벤처기업부 ‘백년가게’로 지정된 소감이 남다를 것 같습니다. 앞으로의 각오와 목표가 궁금합니다.
오래된 가게의 가치를 알아봐 주어 고맙고 자부심도 생깁니다. 손님들도 ‘백년가게’ 타이틀을 좋게 봐주시고요. 앞으로 하는 데까지 최선을 다해야죠. 제 신조가 ‘어떤 일이 닥쳐도 순간에 최선을 다하자’이거든요. 오늘 하루를 잘 살고, 한 달, 일 년을 한결같이 지내다 보니 어느덧 40년이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스스로를 속이지 않고 엄마가 집에서 해준 것처럼 좋은 음식, 편안한 음식을 대접하겠습니다. 무엇보다 그동안 대호정을 꾸준히 찾아주신 손님들에게 참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네요.
· 주소 : 서울 금천구 시흥대로52길 51
· 전화 : 02-808-5200
· 영업시간 : 오전 10시~오후 10시(연중무휴)
· 주요메뉴 : 돼지갈비, 버섯생불고기, 꽃등심, 오징어쌈밥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