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면 좀 즐긴다는 마니아 사이에서 경기도 양평 옥천면은 냉면 성지 중 하나다. 자고로 물이 좋아야 냉면 육수의 깊은 맛이 제대로 우러나는 법. 상수도 보호지역인 옥천면의 맑은 물은 어디서도 흉내 낼 수 없는 냉면 맛을 보장한다. 3대가 함께 일구고 있는 ‘옥천면옥’의 냉면 역시 특별하다. 육수의 맛은 묵직하고, 메밀면의 향은 깊으며, 곁들인 반찬 하나하나에는 손맛이 느껴진다. 그뿐인가. 손으로 일일이 반죽해 틀을 잡은 완자와 두툼한 녹두 빈대떡이 철판에 지글지글 익어가는 소리와 냄새는 자연스레 침샘을 고이게 한다.
37년 전통, 옥천면옥의 고집
“이 맛을 못 잊어 멀리서 찾아오시는 분들이 많아요. 그 마음에 보답하기 위해 연중무휴 원칙을 고수하고 있어요. 귀한 걸음을 헛되게 할 수 없다는 시어머니의 철칙이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죠.”
옥천면옥을 일군 박두남 창업주는 77세의 나이에도 여전히 가게를 지킨다. 냉면의 맛을 깐깐하게 관리하는 것은 물론 손님을 맞고 서빙을 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아들 유계식 씨와 며느리 이은숙 씨도 앉아있을 틈이 없다. 철판 앞에서 완자와 빈대떡을 굽는 아들, 정갈한 냉면을 책임지는 며느리, 그리고 부모님을 도와 계산대를 맡은 손자까지 3대가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그저 정겹다. ‘옥천면옥’이라는 네 글자가 큼지막하게 쓰인 파란 간판은 세월에 따라 변하면서도 전통과 원칙은 고수하는 옥천면옥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한눈에 보여주고 있다.
평양냉면과 완자의 환상 궁합
시어머니와 함께 옥천면옥을 운영 중입니다. 1985년부터 이 자리를 지키셨는데 어떻게 출발해 2대까지 이어지게 되었나요?
시할머니 고향이 평양이라 평양냉면은 익숙한 음식이었다고 하세요. 시할머니와 시어머니가 강화와 영등포에서 고기와 냉면을 함께 파는 가게를 운영하기도 하셨고요. 그러다 양평 옥천에 자리 잡은 다음부터는 평양냉면 전문점으로 정착하셨죠. 1985년도부터이니 40년이 다 되어갑니다. 저도 스물세 살에 결혼한 이후부터 가게 일을 쭉 도왔으니 30년 경력이 코 앞이네요. 2014년부터는 가업승계를 통해 제대로 이어받게 되었고요.
옥천면옥을 비롯해 양평군 옥천면에 일대에 냉면집이 모여있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옥천면옥 냉면의 첫 번째 비법이기도 한데요. 물이 좋습니다. 옥천이 구슬 옥(玉)에 샘 천(泉)을 사용하더라고요. 상수원 보호구역이라 지하수의 질이 좋아요. 냉면은 육수가 핵심이잖아요. 물맛은 매우 중요한 조건 중 하나죠. 반죽도 어떤 물을 쓰느냐에 따라 차이가 나더라고요. 홍천 분점을 낸 적이 있는데 같은 방식으로 조리해도 맛을 그대로 재현하기가 힘들었습니다.
물맛은 기본이고 그 위에 옥천면옥만의 맛의 비결이 더해질 텐데요. 무엇을 꼽을 수 있을까요?
좋은 물로 만든 육수가 특별합니다. 소고기 육수를 기본으로 다시마, 무, 파, 생강 등 천연 재료로 감칠맛을 냅니다. 큰 솥에 끓여 식힌 다음 사용하는데요. 과정과 보관이 번거로워 진하게 우린 뒤 물로 희석한 육수를 사용하는 곳도 많다고 해요. 저희는 끓인 육수를 100% 사용하기 때문에 맛이 더 깊습니다. 둘째, 장을 직접 담급니다. 육수의 간도 직접 담근 장으로 하고, 기본 소스도 마찬가지이죠. 저희 가게만의 맛을 지닐 수 있어요. 셋째, 좋은 재료를 엄선합니다. 고춧가루는 제천에서 나는 국산 고추 1,000근을 구입해 직접 빻아 사용하고 있어요. 이미 빻은 고춧가루를 사면 중간에 수입산과 섞일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시어머니와 고추 방아를 찧는 방앗간에 가서 직접 지켜보기도 했지요. 요즘 제철인 새우젓은 얼마 전 강화 경매장에서 직접 보고 1년치를 구입했어요. 날이 더 쌀쌀해지면 무를 사러 가야죠. 눈으로 보고 믿을 수 있는 재료만 구입합니다. 주재료인 고기 역시 신뢰가 다져진 30년 이상 단골과 거래하죠.
냉면은 얼핏 보면 무척 단순해 보이는 음식인데 미리 준비할 재료가 상당하네요.
겉보기와는 달라요. 저희 가게는 김치도 매년 1,000포기 정도를 직접 담급니다. 오이도 직접 수확해 절여두고, 무절임도 가장 맛이 좋을 때 한꺼번에 만들어두죠. 냉면과 궁합이 좋은 완자는 돼지고기를 갈아 직접 만들고 있는데요. 손이 많이 가기 때문에 둘째 딸과 전날 밤에 만들어두고 갈 정도로 신경을 쓰고 있어요.
냉면과 궁합이 좋은 완자, 편육, 빈대떡도 인기 메뉴더라고요.
완자와 빈대떡은 주문이 들어오는 대로 바로 부쳐주는데 식용유 대신 돼지비계를 사용하는 점이 특별하죠. 더 고소하고 깔끔한 맛을 내요. 녹두빈대떡의 경우 일반 식용유로 부치면 기름만 잔뜩 흡수하거든요. 편육도 특제 비법으로 삶아내어 맛이 더 좋습니다. 강화에서 공수한 새우젓에 찍어 먹으면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죠.
여전히 시어머니와 함께 가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곁에서 지켜보며 배운 점도 많을 것 같습니다.
어머니는 지금껏 ‘연중무휴’의 철칙을 지켜오셨어요. 이는 돈을 몇 푼 더 벌기 위한 욕심이 아니라 성실함과 책임감의 상징이라고 생각해요. 존경할 부분이죠. 저의 경영 원칙도 여기서 출발해요. 1985년 개업 초기부터 단골이었던 손님이 ‘先義後利(선의후리)’를 붓글씨로 쓴 액자를 선물해주셨는데요. 옮음을 먼저 생각하고, 이익을 나중에 생각하라는 뜻이 마음에 들어 저의 경영 철학으로 삼고 있죠. 어머니의 마음도 이와 같지 않을까 생각해요.
새로운 세대인 만큼 대표님이 더욱 발전시키는 부분도 있을 것 같아요.
어머니대에는 인력을 많이 투입해 운영하는 구조였어요. 일일이 손으로 하고 사람 힘을 들여야 했죠. 하지만 요즘엔 사람 구하기가 쉽지 않아요. 지방은 더욱 심하고요. 그래서 설비의 기계화, 자동화에 신경쓰고 있습니다. 쉽게 움직일 수 있는 가마, 최신식 반죽 기계 등 맛의 기본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설비를 개선하고 있습니다. 트렌드도 늘 눈여겨보며 변화를 준비합니다. 반려견과 함께할 수 있는 테이블을 데크에 마련한 게 하나의 사례죠.
자녀분들이 자연스럽게 가게 일을 돕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백년가게로 인증을 받으셨는데 감회가 새로울 것 같습니다. 소감과 함께 앞으로의 계획을 들려주세요.
사실 시부모님과 같이 살면서 24시간 함께 일하는 게 쉽지만은 않거든요. 그동안 잘 참고 버틴 보람이 있네요. 반면 어깨도 무거워요. 누가 이을진 몰라도 100년을 가려면 기반을 잘 다져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건물 자체가 100년 가까이 되어 가게를 깨끗이 관리한다고 해도 동선이 불편하고, 시설이 낡을 수밖에 없어요. 아이들에게는 좀 더 안전하고 깨끗하고 쾌적한 상태의 가게를 물려주고 싶습니다. 그래야 장사할 맛이 나고 손님들도 더 기분 좋게 발걸음을 하지 않을까요. 냉면집은 자리를 옮기면 맛이 변한다는 걸 잘 알기에 옥천, 지금의 자리를 내실 있게 잘 보존해가겠습니다.
· 주소 : 경기 양평군 옥천면 옥천길 13
· 전화 : 031-772-5187
· 영업시간 : 9:30~20:30(연중무휴)
· 주요 메뉴 : 물냉면, 비빔냉면, 완자, 편육, 빈대떡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