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실록으로 읽는 왕실의학

<8> 조선시대의 전염병, 역질

각 도에 역질(疫疾)이 성행한다. 각 수령은 구료(救療)에 힘쓰라. 그렇지 않으면 많은 사람이 젊은 나이에 죽을 것이다. 내가 심히 안타깝게 여긴다. 향소산(香蘇散) 십신탕(十神湯) 승마갈근탕(升麻葛根湯) 소시호탕(小柴胡湯) 등의 약을 여러 도의 감사에게 보낸다. 약의 바른 처방으로 백성을 구하라.

- 『세종실록』 세종 1년(1419) 5월 1일

역(疫), 온역(瘟疫) 등으로 불리는 역질(疫疾)은 전염병이다. 근래 발생한 코로나19(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를 비롯해 메르스(중동 호흡기 증후군), 사스(중증 급성 호흡기 증후군). 신종플루(A형 독감) 등의 바이러스질환과 유사하다. 천연두와 홍역도 이에 해당된다.

역질은 『세종실록』에 34번 나오고, 『조선왕조실록』 전반에 걸쳐 1천 건 이상 기록되어 있다. 역질은 옛사람이 가장 두려워한 질환으로 첨단 의료기관과 방역시설이 없던 그 당시에는 역질이 발생한 한 그 지역이 초토화되었다. 그러므로 역질이 돌면 백성은 뿔뿔이 흩어질 수밖에 없었다. 마을은 폐허가 되고, 고을 행정은 마비되었으며 한양에서는 전염병이 창궐하면 환자들을 도성 밖으로 내보내 격리했다. 도성 밖에선 활인서(活人署) 소속의 의사와 의학을 아는 무녀(巫女)가 환자를 보살폈다. 격리 조치에는 왕족이라고 예외는 없었다. 왕비 등 왕실 가족이 역병이 걸리면 피난을 하게 했다. 왕도 가족이 있는 곳에서 다른 곳으로 거처를 옮겼다.

사람이 역질(疫疾)에 걸려 죽으면, 혹은 산간에 갖다 놓고 풀로 덮어 장사하고, 혹은 싸서 나뭇가지에 매달아 두었다가, 지금 어느 마을 어느 사람 할 것 없이 모두 향도(香徒)들과 결탁하여 매장하게 하는데, 자손이 있고 부유한 집의 장사에는 다투어 모여들어 묻어 주고 있으나, 자손도 없고 가난한 집 장사에는 내버려 두고 돌아보지 않아서, 혹은 산화(山火)에 사체(死體)가 타기도 하고, 혹은 호리(狐狸)가 뜯어먹기도 하여, 화기(和氣)를 손상하게 하오니, 원하건대, 이제부터는 곤궁한 사람의 장사도 전부 향도에게 붙여, 이를 감독하여 매장하도록 하소서.

- 『세종실록』 세종 5년(1423) 12월 20일

위 기록처럼 전염병은 죽은 사람에 대한 수습도 어렵게 했다. 고려 말 조선 초만 해도 역병에 걸려 죽은 사람을 산에다 놓고 풀로 덮어 장사하거나 나뭇가지에 매달아 두는 일이 많았다. 역질 확산 걱정에 시신 수습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다. 이와 같은 재앙 수준의 전염병은 인구 구조를 변화시킬 정도였다. 족보학자인 이병창 가승미디어 대표는 “전염병이 창궐할 무렵에 한 집안에서 부자, 부모 등이 함께 죽은 기록이 많다. 이 같은 현상이 지역과 시기에 차이를 두고 나타난다.”고 말한 바 있다.

이처럼 무서운 역질에 대해 세종 또한 무척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에 세종은 약재를 통한 실질적인 치료, 위생환경 개선으로 확산 방지, 그리고 제사를 통한 백성의 심리적 안정책을 취했다.

먼저, 약치에 대한 조치를 살펴보면 세종은 전염병이 창궐한 1년 5월 1일에 약재를 전국의 수령에게 내려 보내 환자 치료에 전념토록 했다. 또한, 6년 2월 30일에도 지방 수령들이 적극적으로 역질에 걸린 백성들을 살리려 하지 않는다며 이를 질책한 후 향소산(香蘇散), 십신탕(十神湯) 등의 약재로 의학생도(醫學生徒)들로 하여금 신속한 치료를 하게 한다. 또한, 인력 부족을 고려해 환자에게 죽을 먹일 수 있도록 무녀(巫女)의 무시 출입을 허락한다. 세종의 이러한 애민(愛民)의 뜻은 훗날 조선의 헌법인 『경국대전(經國大典)』에 “환자가 가난하여 약을 구하지 못하면 관(官)에서 지급하라.”라는 구절로 명문화된다.

다음은 위생환경 개선이다. 임금은 역질로 죽은 사람을 전부 매장하게 조치하였다. 앞서 살펴보았듯 당시 부자이거나 세력 있는 집안은 역질로 죽으면 매장을 하였다. 그러나 가난하거나 후손이 없어 산에 방치되는 시신은 산화되거나 짐승의 먹이가 되는 등의 일이 일어나니, 세종은 지순안현사(知順安縣事)였던 박전(朴甸)의 상소를 받아들여 관리의 책임 아래 이를 모두 매장하여 전염병 확산을 막도록 하였다.

마지막으로 백성들이 두려워하지 않도록 여제(?祭)를 지내 심리적 안정을 꾀하는 것이었다. 여제는 불운하게 죽거나 제사를 받지 못하는 여귀(?鬼)를 위로하는 제사였다. 기록에 따르면 여제의 역사는 중국의 주나라 시대에 시작되었다. 주나라의 제례에 대해 적고 있는 『예기(禮記)』에는 천자는 일곱 가지 제사를 지내는데 이 중 여제가 포함되어 있다. 중국에서는 주나라 이후 약간의 형태적인 변화가 보이기도 하지만 역대 왕조를 통해 계속해서 여제를 중시하여 지냈다. 본래는 후손 없이 죽은 옛 제왕을 기리는 것이었는데 점차 그 목적이 제사를 받아먹지 못하는 귀신에게 제사를 지내 줌으로써 한을 풀어주고, 여귀가 민간에 해악을 끼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으로 변하였다.1) 태종(太宗)이 그 예법을 정한 이래로 국가는 물론 각 군현 단위의 고을까지 여제단을 만들어 여제를 지내게 되었는데 전염병이 가라앉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과 불안해하는 백성의 마음을 안정시키기 위해 세종 역시 여제(?祭)에 쓸 향과 축문을 친히 전하기도 하였고, 역질이 발생한 지역의 고을 수령에게 이를 지내게 하기도 하였으며 친히 제사를 거행하기도 하였다.2)

그렇다면 세종이 역질에 적용한 승마갈근탕, 소시호탕, 향소산 등의 약재는 어떤 효과가 있었을까. 승마갈근탕(升麻葛根湯)은 상한(傷寒)이나 온역(溫疫) 및 풍열(風熱)로 열이 심하고 두통이 있는 증세를 치료한다. 또한, 허실에 상관없이 두창(痘瘡)이 이미 발생하였거나 아직 발생하지 않았을 때도 모두 치료할 수 있는 상용 약물로 활용되었다. 즉 홍역에 대한 치료법으로 보인다. 소시호탕(小柴胡湯)은 온역 혹은 감모(感冒:두통, 코막힘, 오한발열 등이 나타나는 일종의 외감질병)로 인해 한열(寒熱)의 왕복이 학질과 같고, 혹은 발열과 함께 흉민감, 식욕 부진, 구토를 동반하는 병증을 치료한다. 향소산(香蘇散)은 향부자, 자소엽, 감초, 진피 등으로 구성되어 전염병의 초기나 일반적인 감기 증세도 널리 사용했다. 십신탕(十神湯)은 승마갈근탕과 궁지향소산을 합한 것에 마황을 넣은 것으로 땀을 내어 온역을 치료하는 처방이다.

역질에 해당하는 오늘날의 전염병에는 이런 한약 처방들이 어떻게 활용될 수 있을까. 코로나19가 대구에서 갑자기 확산되어 전 국민이 걱정과 우려에 빠져 있었던 2020년 3월, 대한한의사협회는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19 한의진료 권고안』을 발표했다. 아직까지 백신이 개발되지 않은 상황에서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기 위하여 한의사들의 적극적인 치료와 노력이 필요한 상황이라는 판단에서였다.

<표 1> 코로나-19에 대한 한방진료 약물처방 지침 구성표와 알고리즘흐름도3)

코로나-19에 대한 한방진료 약물처방 지침 구성표

* : 보험약 / 일반제제
† : 중국위생위진료방안6판
‡ : 중국광동성치료방안2판
§ : 중국흑룡강성방치방안2판

알고리즘흐름도

코로나-19 이전에도 대표적 바이러스 질환인 인플루엔자 감염을 한약으로 극복하고자하는 노력들도 많았다. 일본에서는 5세부터 35세까지 고열을 동반한 인플루엔자 확진 환자 18명에게 ‘은교산(銀翹散)’을 1일 3회 투여한 일이 있다. 그 결과 16명이 24시간 이내에, 나머지 2명이 각각 48시간과 72시간 이내에 체온이 37.4℃ 이하로 떨어지고 일주일 동안 재발이 없었다는 임상 사례가 보고된 바 있다.(제59회 일본 동양의학회 학술총회 강연 요지집·2008년) 이와 같은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일본 의사들로 구성된 동양의학회에서는 독감 치료에 한약 치료, 혹은 한약·양약 병행치료를 권하고 있다.

중국에서도 한약 탕제를 상시 복용한 경우 인플루엔자 유사증상(ILI) 발생을 감소시켰다는 학술논문이 발표되었으며(Strait Pharmaceutical Journal·2013년) A형 인플루엔자 소아 환자에게 해열까지 걸리는 시간을 비교한 결과, 항바이러스제만 복용한 경우 평균 24시간이 걸렸는데 항바이러스제와 마황탕을 같이 투여한 경우에는 18시간, 마황탕만을 투여한 경우에는 15시간으로 현저하게 시간이 줄어든 것으로 조사되기도 하였다.(Phytomedicine·2007년)

이밖에도 미국 내과학회지에는 성인 인플루엔자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해 본 바 위약 복용군은 전체 실험군 중 34%가 항생제를 처방받은 것에 비해 한약인 ‘마행감석탕(麻杏甘石湯) 합(合) 은교산’ 복용군은 9.7%만이 처방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위약 복용군의 발열 증상 시간은 26시간이었지만 한약 복용군은 16시간으로 약 37%가 단축됐다는 연구결과가 게재되기도 했다.(Annals of internal medicine·2011년)

전 세계에 알려진 바이러스는 5000여 종이고, 지구상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바이러스는 수백만종이다. 감염질환을 일으키는 전염성이 높은 바이러스는 쉽게 돌연변이를 일으켜 다른 구조로 변하는 RNA바이러스에 해당한다. 이런 이유로 바이러스를 발견해서 이에 대한 치료제나 백신을 만드는 것은 매번 한 발짝 늦을 수밖에 없다. 그러니 한의학에서 강조하는 선제적인 자연치유력, 면역력이 더욱 중요한 시대가 되어가고 있다.

나에게 성황(城隍)의 뜻을 묻는 이가 있었다. 나도 그 유래를 몰라서 『오례의(五禮儀)』에 상고하니, 여제축사(?祭祝辭)에, “의탁할 곳 없는 귀신에게 치제(致祭)한다. 사람의 죽고 삶이 만 가지로 같지 않은바, 예부터 지금까지 죽음을 제대로 하지 못한 자가 하나뿐이 아니었다. 혹은 전쟁에서 나라를 위해 죽기도 하고, 혹은 다투다가 구타를 당해 죽기도 하고, 혹은 수화(水火)와 도적을 만나 죽기도 하고, 혹은 기한(飢寒)과 염병(染病)에 걸려서 죽기도 하며, 혹은 담과 집이 엎어져서, 혹은 벌레와 짐승에게 물려서 죽기도 한다. 혹은 죄도 없이 사형을 당하고, 혹은 재물로 인해 협박을 받아 죽으며, 혹은 처첩(妻妾)으로 인해 목숨을 잃는다. 혹은 위급한 경우에 목매어 죽고, 혹은 죽어 자손이 없으며, 혹은 애기를 낳다가도 죽는다. 혹은 벼락을 맞아 죽기도 하고, 혹은 벼랑에서 떨어져 죽기도 한다. 이와 같은 유가 얼마나 되는지 모른다. 외로운 혼이 의탁할 곳이 없고 제사도 받아먹지 못하니, 죽은 혼이 흩어지지 않고 맺혀서 요망한 짓을 한다. 이러므로 성황에 고하여 뭇 귀신을 불러 모아서, 맑은 술과 여러 가지 음식으로 권해 드리니, 너희들 여러 귀신은 이 음식을 잘 먹고 여역(?疫)과 재앙으로써 사람의 화기(和氣)를 해치지 말라.” 하였다.
또 성황발고축(城隍發告祝)에, “오는 모월 모일 북교(北郊)에서 단(壇)을 베풀고 의탁할 데 없는 온 경내 귀신을 제사하려 한다. 성황신(城隍神)은 힘껏 불러 모아서 제단(祭壇)으로 나아가라.”고 하였으니, 성황이란 여제(?祭)로서 큰 것이다. 뭇 귀신을 불러 모아서 함께 흠향하도록 한 것이다.

- 이익(李瀷:1681~1763) 『성호사설(星湖僿說)』 「만물문(萬物門)-성황묘

  • 1) 『한국민족대백과사전』「여제」
  • 2) 예조(禮曹)에서 여제 의주(?祭儀注)를 지어 바치었는데, 성황단(城隍壇)에서 발고(發告)하고, 북교단(北郊壇)에서 제사를 행한다. - 『세종실록』 89권, 세종 22년(1440년) 6월 29일
  • 3)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한의진료 권고안』, 사단법인 대한한의사협회, 2020,p2~3, p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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