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공감1

충장로에서 38년,
청하회관으로 오세요

광주 청하회관 홍순학 대표

한 자리를 지킨 오래된 가게는 도시의 상징이 되고, 골목의 역사가 되며, 사람들의 추억이 된다. 1984년 문을 연 이후 단 한 번도 자리를 옮기지 않은 일식집 청하회관이 광주 충장로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듯 말이다. 전남 해남 출신의 홍순학 대표는 해산물을 기반으로 한 회정식, 초밥, 제철 매운탕을 정갈하게 선보인다. 신선한 재료에 전라도의 감칠맛 나는 밑반찬이 어우러져 깔끔하게 즐길 수 있는 맛집이다.

충장로의 역사, 청하회관

물론 38년 동안 우여곡절도 많았다. IMF로 가게가 휘청거렸고, 가게가 불타 이전을 생각한 적도 있다. 하지만 그때마다 사람들이 손을 내밀며 그를 일으켜 세웠다. “제가 인복이 참 많은 것 같아요”라고 말하지만 홍순학 대표가 정직하고 성실하게 쌓아온 덕이기도 한다.

“식당이라는 게 대충대충 얼렁뚱땅 운영해서는 안 됩니다. 정말 목숨 걸 각오로 달려들어야 한다고 후배들에게 강조해요. 저는 가게 문을 연 1984년부터 지금까지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새벽시장에서 직접 장을 봅니다. 그런 기본부터 흔들림 없이 지켜가야죠.”

그 덕분일까. 청하회관은 믿을 수 있는 식당, 제값 하는 식당, 누구와 함께 가도 후회 없는 식당으로 단단히 뿌리내렸다. 왜 아니겠는가. 때로는 함께 일한 직원들이, 때로는 관공서의 공무원이 붙잡을 만큼 애정을 쏟는 많은 이들과 함께 역사를 이어왔다. 충장로의 자부심으로 남은 청하회관은 이제 백년가게로 그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정갈한 해산물 요리, 매일 시장에 가죠

1984년 청하회관을 창업해 지금까지 이어오고 계십니다. 처음 어떻게 문을 열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전남 해남이 고향인데 중학교를 야학으로 다니고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싶었어요. 마침 광주에서 식당을 하던 사촌 형님이 거기서 1년만 일하면 고등학교에 보내주겠다고 해 일을 시작하게 되었죠. 그런데 1년 후가 되자 1년만 더 해라, 그 후 또 1년만 더해라, 하면서 학교를 안 보내주더라고요. 어쩔 수 없이 그곳에 나와 다른 식당에서 일하던 중 가게를 판다고 하길래 제가 인수하기로 했습니다. 17살에 일을 시작해 스물넷에 일찌감치 창업했지요. 1984년 당시 보증금이 2,300만 원, 권리금인 2,000만 원으로 꽤 비싼 목이었는데 그 돈이 어디 있겠어요. 내 식당을 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 지인들에게 돈을 빌리고, 대출과 일수까지 다 끌어와 지금 이 자리에 청하회관을 오픈했습니다.

청하회관의 주요 메뉴는 무엇인가요?

생선 요리를 중심으로 한 일식당에서 일을 배웠기 때문에 그 메뉴를 이어갔습니다. 광주에서 차로 1~2시간 이내에 완도, 진도, 여수, 목포, 무안 등이 인접해 있어 싱싱한 해산물을 바로바로 수급할 수 있거든요. 회를 메인으로 한 정식, 초밥, 매운탕 등은 초창기부터 꾸준히 있었고, 8년 전부터 추가한 굴비 메뉴도 많이 좋아해 주십니다. 보통 굴비는 쪄서 내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면 살이 너무 물러지고 맛도 덜해요. 시간이 더 걸리고 과정도 번거롭지만 저희는 굴비를 구워서 내드리고 있습니다. 식감도 더 쫄깃하고 불맛도 배어 맛이 좋습니다. 요즘에는 민어매운탕이 좋을 때고요, 중요하게 모셔야 하는 분과 함께라면 회정식을 추천합니다.

광주의 번화가에서 38년 동안 한 자리를 지켜왔다는 건 그만큼 손님들에게 맛집으로 신뢰를 얻었다는 증거인데요. 어떤 노력이 담겨 있나요?

식당은 기본적으로 싱싱한 재료를 사서 정성껏 조리하면 된다고 봅니다. 무엇보다 정직해야 하고요. 요즘은 고객들이 더욱 다채롭게 맛을 즐기시기 때문에 저희보다 입맛이 훨씬 까다롭습니다. 대충 내놓으면 한두 명은 속을지 몰라도 지속하기는 쉽지 않죠. 저는 창업해서 지금까지 매일 6시에 일어나 시장에 갑니다. 풍암시장, 남광주시장, 대일시장 세 곳을 들르는데요. 저는 주재료인 생선, 해물 위주로, 아내는 반찬 등의 부재료를 주로 살피죠. 제가 직접 눈으로 보고 만져봐야 안심이 되고, 확실히 더 좋은 재료를 구할 수 있습니다. 이 원칙만은 어길 수 없습니다.

식당은 상권의 부침이나 시대적 트렌드에 영향을 많이 받는 업종이기도 하죠. 긴 역사만큼이나 우여곡절도 많았을 것 같은데 어떻게 해쳐오셨는지 궁금합니다.

충장로는 광주에서 제일 가는 상권이었지만 IMF로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계속 적자가 쌓이니 도무지 버틸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문을 닫으려고 했죠. 그런데 직원들이 시간을 달라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이틀 뒤 5명은 자진해서 그만두고 5명만 남기로 했다고, 꼭 어려운 시기를 이겨냈으면 좋겠다고 오히려 저를 위로하더라고요. 이후 회복이 더디자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월급을 30% 감봉하겠다고 했고요. 많이 배운 것도. 잘난 것도 없는 저를 믿고 따라와 준 게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요. 한참이 지나 가게가 다시 일어선 다음 감봉분은 모두 챙겨주었습니다.

2007년에는 가게에 화재가 나서 완전히 타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이전에는 충장로에 터미널, 시청, 도청이 밀집했는데 이들 모두 이전하면서 세가 많이 약해졌었는데요. 겸사겸사 신개발지구로 이전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소식을 들은 동구청장님과 부구청장님이 차례로 찾아와 청하회관과 같은 가게가 버텨야 동구가 살고, 충장로가 산다며 이전을 만류하셨습니다. 그 간곡함에 설득되어 한 자리를 지키게 되었는데 잘한 것 같아요. 광주 동구에서 자리 이전, 명의 이전 없이 35년 이상 쭉 이어온 유일한 식당이라고 하더라고요. 요령 피우지 않고 우직하게 걸어온 게 비결 아닐까요.

기억에 남는 손님도 많을 것 같습니다.

3대에 걸쳐 오시는 손님들이 많아요. 저에게 변치 않고 이 자리에 있어서 늘 감사하다고 말씀하시는데 사실 제가 감사할 일이죠. 10~20년 동안 함께 해온 직원들도 그렇고, 손님들도 그렇고 제가 인복이 많습니다. 이 가게를 1999년 즈음 인수했는데 제가 돈이 어디 있었겠어요. 그런데 건물주가 소유권 이전을 먼저 한 후, 가게를 담보로 대출을 받아 잔금을 치르라고 제안을 하시더라고요. 사실 위험부담이 큰 절차잖아요. 그런데 오랫동안 저를 봐왔는데 자식들보다 더 믿는다며 밀어붙이셨습니다. 참 감사했습니다.

오랜 시간 건실하게 식당을 일군 대표님의 경영 철학이 궁금합니다.

나중에 후회하지 말자. 어떠한 일을 하더라도 대충대충 얼렁뚱땅해서는 안된다. 제가 늘 명심하고 후배들에게도 전하는 말입니다. 대한민국에 64만 개의 식당이 있는데 개업 후 5년 생존율이 17%, 10년 생존율이 8%밖에 안 된다고 해요. 정말 목숨 걸고 달려들어야 합니다. 초창기에는 직접 명함을 돌리기도 하고, 일단 맛을 보시고 맛이 없으면 그냥 가셔도 좋다고 영업을 하기도 했습니다. 간절함, 치열함은 늘 간직하고 있어야 합니다.

백년가게 선정이 더욱 뜻 깊을 것 같습니다. 소감과 함께 앞으로의 각오와 목표를 말씀해주세요.

뿌듯하고 기분이 좋았어요. 신청하러 가니 담당하시는 분과도 안면이 있더라고요. 가끔 시장 조사 겸 일본에 가면 오래된 가게들이 인상적이었어요. 400년 된 오뎅 가게의 경우 장관을 하던 분이 부모님이 연로하자 퇴직하고 대를 잇더라고요. 우리나라에도 3~4대가 계속 이어가는 가계가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다행히 아들이 요리에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지금은 중화요리를 배우고 있는데요. 생선과 접목할 수 있는 메뉴가 많으니 부지런히 배우라고 격려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한눈팔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가게를 오래도록 이어가고 싶습니다.

광주 청하회관

· 주소 : 광주 동구 충장로 45-12
· 전화 : 062-223-7037
· 영업시간 : 11;30~14:00, 17:00~21:00(일요일 휴무)
· 주요메뉴 : 회정식, 왕굴비정식, 초밥, 민어탕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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