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호 우호적인 분위기에서 계약서를 작성하고 거래관계를 지속하는 경우에도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발생하여 어려움을 겪는 사례를 많이 접할 수 있습니다. 최근의 코로나 뿐만 아니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그리고 자연재해 등 우리가 통제하거나 예측할 수 없는 상황들이 생기곤 하는데요. 이처럼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 처한 당사자에게 계약의 이행을 강제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 지 의문인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 처한 거래 당사자는 ‘불가항력’ 개념을 이용하여 계약이행 책임의 면제를 주장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사유들이 존재한다고 하여 곧바로 면책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사실관계가 검토된 후 인정여부가 달라질 것입니다. 아래에서는 불가항력이 인정된 사례와 그렇지 않은 사례에 대해 살펴보고, 이를 통해 거래관계에서 어떠한 점을 유의해야 하는지 설명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내전을 불가항력으로 인정한 사례]
신청인은 A국의 정부로부터 대학교 건물 신축에 관한 설계 및 시공을 도급받아 피신청인과의 사이에 설비공사계약을 체결하였으나, 체결일로부터 6개월 뒤 A국에서 내전이 발생하여 공사가 중단되었다. 신청인은 당사자들의 귀책사유 없이 설비공사가 이행불능의 상태가 되었기에 선급금의 반환을 주장하였다. 이 사례에서 중재판정부는 A국의 내전 상황을 불가항력으로 인정하고 계약의 해제는 적법하다고 판정하였다. 다만 반환해야 할 선급금에 관하여는 현지 사용경비와 공구류 및 자재 구입비는 전부 인정하였고, 자재 장비 구입계약 선수금 및 사무집기류 구입비와 항공료 및 출장비, 해외파견 직원 및 제3국 근로자 급여는 일부만 인정하였으며, 철수 후의 근로자 인건비는 인정하지 아니하였다.
[폭설과 한파를 불가항력으로 인정하지 않은 사례]
신청인은 피신청인과 B국가 현지 회사로부터 발전용 연료를 조달하여 피신청인에게 공급 및 판매하는 계약을 체결하였다. 이후 B국가의 폭설과 한파로 운송이 불가능해져 납품이 지연되었고 신청인은 불가항력을 주장하며 지체상금의 부과가 부당하다고 주장하였다. 이 사례에서 중재판정부는 “불가항력이란 단순히 폭설이나 홍수 등 일정한 사태가 일어난 것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고 ‘계약당사자의 통제범위를 초월하는 사태’에 해당하는 사유가 있어야 비로소 인정될 수 있는 것이다. 불가항력에 해당하기 위하여는 폭설이나 홍수 등의 사정이 발생하였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그러한 사정이 통상적으로 예견할 수 있는 가능성의 범위를 벗어날 뿐 아니라 이러한 사정을 회피할 수 있는 가능성도 거의 없다는 것이 요구되는 것”이라 언급하며, 폭설과 한파로 운송이 일부 중단되고 도로의 일부가 잠시 폐쇄된 정도의 사정만으로는 불가항력으로 인한 면책사유가 될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위 사례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불가항력의 인정 여부에는 다소 엄격한 조건이 따른다는 것입니다. 즉, 단순히 어떠한 곤란한 상황이 발생하였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그 상황이 일정 시간 이상 지속됨과 동시에 상황을 회피할 수 있는 가능성도 희박하다는 것이 입증되어야 할 것입니다.
물품의 이동거리가 길거나 계약이 장기간인 거래의 경우, 계약 체결 시 반드시 상대방과 합의하여 불가항력 조항을 기입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분쟁해결을 대한상사중재원의 중재를 통해 해결한다는 내용 등을 기입한다면, 분쟁의 장기화에 고통받지 않고 보다 신속하고 유연하게 분쟁을 해결하여, 거래 양당사자들 간에 미래지향적인 거래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