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14일 강북지점 전창분 FM의 따뜻한 사례가 언론에 보도되었습니다. 전창분 FM은 2007년부터 약 15년간 청소년 상담 봉사를 통해 아이들을 도우며 지내왔습니다. 한때 교사를 꿈꿨을 만큼 아이들을 좋아한 그녀에게 한 학교 교장선생님이 청소년 상담봉사를 권한 게 시작이었습니다. 그렇게 전창분 FM은 사춘기 시절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고 있는 아이들 상담을 맡게 되었습니다.
전창분 FM은 일명 중2병을 겪고 있던 아이들을 상담하면서 잠시 엇나갔던 아이들이 바르게 바뀌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청소년 집단 상담사’로 첫 받을 내딛게 된 소중한 기회였습니다. 이후 15년 동안 꾸준히 청소년 심리상담을 이어올 수 있었던 원동력은 자신이 상담했던 10대 아이들이 20대에 인생을 바르게 살아갈 거라는 믿음이었습니다. 사회 속에서 바르게 뿌리내려 건실한 성인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아 성실히 상담 봉사에 임했습니다.
주부와 청소년 상담 봉사를 하며 비교적 평탄했던 전창분 FM의 삶에 큰 변화가 생긴 건 지난 2018년 어머니께서 쓰러지면서부터입니다. 항상 당당하고 굳센 모습으로 6.25전쟁까지 겪었던 어머니가 쓰러지면서 7남매 중 늦둥이 딸이던 그녀가 어머니의 돌봄을 오롯이 책임졌습니다.
전창분 FM은 2018년 8월 프레시 매니저로 첫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23년 전 동갑내기 친구가 전창분 FM의 밝은 성격과 활달함이 잘 어울릴 것 같다며 FM 일을 권유했지만 당시에는 자녀들이 어려 일을 할 수 없던 상황이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동두천으로 이사를 오고 어머니를 케어하면서 할 수 있는 일을 찾다 보니 자연스럽게 예전 생각이 났다는 전창분 FM.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프레시 매니저로 일할 수 있게 되었다는 연락을 받은 그녀는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FM 활동을 시작하면서 예전처럼 상담 봉사를 적극적으로 하고 있지 않지만 지역 내 아파트에 거주하는 어르신들과 아이들을 키우는 어머니들에게 상담이 필요할 경우 누구보다 앞장서서 나섭니다. 인싸답게 이사 온 동네에서 통장을 맡아 적십자 활동으로 어려운 이웃을 도운 결과 표창도 받았습니다. 많은 사람이 그녀의 진정성을 알아보고 도움을 주고, 여유롭지 않은 상황에서도 함께 팔을 걷어붙이고 있습니다.
전창분 FM은 고객들 사이에서 ‘옥정동 예쁜 이모’라고 불립니다. 고객들도 그녀의 밟음을 알아본 것이죠. 지금도 아이들을 너무 좋아해서 자신도 모르게 인사를 건넨다는 전창분 FM. 코로나19 때문에 길게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음에도 긍정 에너지가 고스란히 전해졌습니다.
무언가를 바라고 했다면 긴 시간 그렇게 봉사활동을 못했을 것 같아요. 지금 FM을 하면서 그동안 못 벌었던 돈을 지금 벌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호호호. 프레시 매니저란 일이 그동안 제가 했던 일과 닮은 점이 많아요. 지역사회 곳곳에 어려운 분들과 가장 가깝게 소통할 수 있는 직업이라고 생각합니다. hy 프레시 매니저에 대한 고객들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을 보면서 저도 긍정적인 모습을 계속해서 이어 나가야겠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