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공감1

비벼 나오는 냉면,
계속 당기는 맛이에요

의정부 곰보냉면 이태진 대표

의정부 시민 중 의정부제일시장에 추억 하나 없는 이가 있을까? 인근 도시에서도 찾을 만큼 경기 북부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제일시장은 이름만큼이나 ‘으뜸’을 자랑하는 가게들이 모여 있다. 무려 46년 동안 한 자리를 지켜온 ‘곰보냉면’도 그중 하나다. 2대째 곰보냉면을 잇고 있는 이태진 대표는 어느덧 100년을 잇는 가게를 꿈꾼다.

의정부제일시장에서 46년 냉면집

“1976년, 제가 태어나던 해에 곰보냉면도 문을 열었어요. 정말 형제 같은 가게라 애정이 더욱 깊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가게가 놀이터였고, 크면서는 틈이 나는 대로 부모님을 도왔어요. 초등학교 때부터 달걀을 하루 20~30판씩 깠으니까요. 부모님은 식당 일이 워낙 힘들다는 걸 아니까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다고 했어요. 오히려 제가 고집을 피워 대를 잇게 되었죠.”

곰보냉면을 일군 부모님이 시골로 내려간 후 이태진 대표는 10년을 홀로 가게를 이끌었다. 그 사이 코로나19가 터지고 고물가와 인력난까지 겹쳐 힘든 시간을 보내기도 했지만 이대표는 흔들림이 없다. 부모님의 청춘이 오롯이 담긴 가게, 함께 성장해온 형제 같은 가게를 쉽게 저버릴 수는 없는 법, 오래 가는 가게의 뿌리는 이토록 단단하다.

매콤 달콤 새콤, 중독성 강한 냉면 한 그릇

2대째 운영하는 곰보냉면은 의정부제일시장의 터줏대감인데요. 가게의 46년 역사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궁금합니다.

할머니께서 일찍이 장충동에서 국수 장사를 하셨다고 해요. 아버지는 원래 건설업에 몸담고 계셨는데 아무래도 위험한 상황이 많으니 할머니가 식당을 추천해 형제들과 시작했다고 들었습니다. 의정부제일시장이 지금은 물론 당시에도 일대에서 알아주는 큰 시장이었으니 야심 차게 가게를 연 셈이죠. 그러다 곧 부모님이 도맡아 운영하시면서 지금까지 오게 됐습니다. 어릴 때 할머니께서 함께 만두를 빚던 풍경도 추억으로 남아 있어요.

대표님이 가게를 이어 간 과정도 궁금합니다.

가게에 소일거리가 있으면 돕는 게 일상이었지만 제대로 물려받을 생각은 없었어요. 저는 여행사를 운영하며 제 길을 가고 있었는데 어느 날 부모님이 가게를 접을 생각을 하더라고요. 그때 마음이 안 좋았어요. 제가 태어난 해에 가게를 열어 부모님의 젊음을 다 쏟아부은 곳이 사라진다고 하니 아쉽고 섭섭하더라고요. 부모님이 힘들게 가게를 일궈온 모습을 보고 자랐으니 애정이 더 컸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잇기로 했죠. 이제 10년이 되었습니다.

부모님께서 흔쾌히 곰보냉면을 물려주던가요?

사실은 반대했어요. 장사가 힘들다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잖아요. 특히 저는 여행사에서 일하며 자유롭게 바깥 활동을 했으니 쉬는 날 없이 가게에만 메어있는 일이 더 힘들 거라 판단하신 거죠. 사실 반은 맞고 반은 틀렸습니다. 하고 싶은 게 많은 젊은 나이에 시장 안에 있는 가게에만 묶여있는 게 솔직히 쉽지는 않더라고요. 그런데 손님들이 자신의 어릴 적 추억이 사라지지 않아서 좋다며 오랜만에 와서 반가워하는 모습을 보면 그 고단함이 싹 사라져요. 저에게나 손님에게나 이 곰보냉면이 소중한 추억인 거죠. ‘힘들어도 없애면 안 된다. 오래 유지해야 한다’라는 응원의 한 마디에 힘을 얻어 지금까지 잘 버티고 있습니다.

주요 메뉴인 냉면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겠죠. 곰보냉면만의 특징이 있나요?

가장 많이 찾는 비빔냉면의 경우 다 비벼서 내는 게 특징이에요. 초창기에 가게는 좁고 사람은 많으니 주방에서 비벼서 내주던 게 곰보냉면만의 전통이 되었죠. 메밀면의 경우 부모님 대부터 30년 넘게 거래한 공장에서 납품받고 있는데요. 시중의 면이 아니라 시행착오 끝에 저희 가게 맞춤용으로 굵기, 탄력, 메밀 함량 등을 조절한 면을 독점 제공받고 있습니다. 사실 가게에서 직접 면을 뽑는 면옥집 면보다 단가는 훨씬 비싼 면이에요. 냉면집 간판을 달고 있는 만큼 면에 있어서는 자부심을 지닙니다. 냉면과 잘 어울리는 만두의 경우 직접 빚는데요. 초창기에는 삶는 만두라 피가 두꺼웠는데 점점 피가 얇고 탄력이 있는 만두로 발전했습니다.

어느덧 10년이 되었는데요. 가게 운영의 원칙과 신념이 궁금합니다.

좋은 재료로 정성을 다해 맛을 내는 노력은 다들 비슷하지 않을까요? 조금 더 이윤을 남기려고 재료 관리를 소홀히 하거나, 양념을 아끼면 맛은 금방 변해요. 40여 년 전부터 좋아해 주셨던 맛을 변치 않게 유지하려고 늘 노력합니다. 또 시장에 있다고 해서, 오래된 가게라서 무조건 낡고 지저분할 것이라는 편견을 지우고 싶었어요. 허름할 수는 있어도 위생만큼은 철저히 관리하고 있습니다. 주방 조명부터 밝게 바꾸고 식기류부터 홀 환경까지 깔끔하게 개선했습니다.

부모님께 물려받은 배움도 클 것 같습니다.

가게에 올인하는 성실함과 한결같음을 강조하셨어요. 손님을 진심으로 대하지 않으면 순식간에 무너질 수 있다고요. 손님 한 명을 소홀히 대하는 걸 별거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 사람이 10명, 100명의 손님을 떨어뜨릴 수 있고, 반대로 진심을 다해 단골을 만들면 그 사람이 10명, 100명을 불러온다고 하셨죠. 그래서 지금도 손님 관찰을 유심히 해요. 다 드셨나, 입맛엔 맛나 늘 관심을 기울이죠. 간 세기나 맵기도 손님이 요구하는 바가 있으면 기본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맞추려고 합니다.

가게와 함께 성장하신 만큼 인상 깊은 고객도 많이 만났을 것 같습니다.

부천에서 2~3주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찾는 남자 단골이 계세요. 일 때문에 의정부에 왔다가 우연히 저희 냉면을 드셨는데 계속 생각이 난다면서 말이죠. 지하철을 타고 왕복 3시간을 오가는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는 손님을 보며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엄마, 아빠, 딸아이까지 서울에서부터 자전거를 타고 꾸준히 찾아준 세 가족도 인상적이었죠. 한편 냉면은 포장해서 시간이 지나면 제맛이 안 나는데도 임신한 딸을 위해 꼭 사가야 한다고 하신 아버님도 생각나네요. 물론 제가 졌죠. 몇 년 만에 오셔서 아직도 가게가 있다고 반가워하는 손님 역시 많아요. 그분들을 위해서라도 오래 지켜야죠.

가게 운영에 있어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요.

코로나19에도 단골이 꾸준히 찾아주셔서 버틸 수 있었는데 최근 물가와 인건비가 너무 올라 좀 힘들더라고요. 보통 농산물 시세는 오르내림 폭이 크지 않았는데 최근에는 너무 큰 폭으로 올라 당황스럽더라고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냉면 가격을 6,000원에서 7,000원으로 1,000원 올렸습니다. 고심 끝에 내린 힘든 결정이었는데 다행히 손님 여러분이 이해해주시더라고요. 어떻게든 싸고 양도 많고 맛도 있는 냉면이라는 타이틀을 유지해나가도록 하겠습니다.

백년가게에 선정된 소감도 남다를 것 같습니다. 앞으로 곰보냉면을 어떻게 이끌 계획이신가요?

부모님과 저의 모든 것이 담긴 가게이니만큼 꼭 대를 이어가고 싶습니다. 자녀가 한다면 좋고, 꼭 자식이 아니더라도 곰보냉면의 명맥을 성실히 이어갈 수 있는 분이 있다면 기꺼이 넘겨야죠. 이 형제 같은 가게가 100년을 갈 수 있도록 초심을 잃지 않겠습니다.

의정부 곰보냉면

· 주소 : 의정부시 태평로73번길 20 의정부제일시장 나동 1층 46호
· 전화 : 031-848-1755
· 영업시간 : 09:30~20:30
· 주요 메뉴 : 비빔냉면, 물냉면, 만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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