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공감3

헌혈증 가져오면 고기 한 근 드려요

대구 새댁식육점 이태원 대표
대구 새댁식육점

대구 평화시장에는 특별한 정육점이 있다. 돈을 내지 않아도 고기 한 근을 내어주는 곳, 그렇게 퍼주면 뭐가 남겠냐고 주변의 타박을 듣는 곳, 그런데도 사장님은 늘 사람 좋은 웃음으로 반기는 곳. 의문의 정육점은 1985년부터 평화시장에 쭉 자리한 새댁식육점이다. ‘곳간에서 인심이 난다’라고 하지만 새댁식육점 이태원 대표는 가난한 살림에도 나누고 베푸는 부모님 밑에서 자랐다. 보고 자란 대로 어릴 적부터 커서 돈을 벌면 나누며 살아야겠다고 다짐했고, 이를 뚝심 있게 실천하는 중이다.

“김천이 고향이에요. 그 촌에서도 셋방살이할 만큼 가난했는데요. 부모님은 없는 살림에도 나누기를 좋아했어요. 방물장수가 찾아오면 꼭 아랫목을 내어주고 식사까지 챙겼으니까요. 저는 어릴 때 구안와사에 골수염을 앓으며 힘든 시간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런 어려움을 겪고 나니 세상에 보탬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커지더라고요.”

이태원 대표는 헌혈증을 가져오면 돼지고기 한 근을 주고, 그 헌혈증을 수혈이 필요한 이들에게 주저 없이 내어준다. 자원봉사자에게 고깃값을 할인해주고, 어르신들을 위해 복지관에 고기를 기부한 지도 10년 이상이다. 전통시장은 낡고 불편하다며 발길을 주저하는 요즘, 이토록 정이 넘치는 정육점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대구 평화시장을 찾을 이유는 충분하지 않을까. 물론 국내산 한우와 암퇘지, 딱 이 두 가지만 고집하는 사장님 덕에 믿을 수 있는 질 좋은 고기는 항상 보장된다.

‘나’가 아닌 ‘우리’를 생각하죠

1992년부터 대구 평화시장에서 새댁식육점을 운영하고 계십니다. 벌써 30이 넘었는데요. 어떻게 정육점을 열게 되었나요?
1985년, 군대에서 제대하자마자 정육점에 들어갔어요. 발골까지 기본기를 탄탄하게 익힌 다음 결혼하고 애가 100일 정도 되었을 무렵 내 가게를 차리게 되었습니다. 갓 결혼한 부부라 주변에서 아내를 ‘새댁’이라고 많이 불렀거든요. 그 어감이 정겨워 ‘새댁식육점’이라고 이름을 붙였죠. 1992년부터 지금까지 한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평화시장 내에 자리하고 있는데요. 시장에 위치한 매장만의 장단점이 있을 것 같습니다.
평화시장은 도심 속의 농촌 같아요. 두레라고 할까요. 정이 넘치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함께 나서서 돕지요. 오랜 단골의 경우 집안 경조사까지 다 알 정도로 친밀하고요. 다만 제가 시장에서 젊은 층으로 꼽힐 만큼 상인들의 나이가 많아요. 낡고 불편하다는 인식이 굳어지면서 젊은 세대의 발길이 점점 줄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그래도 단골들은 꾸준히 찾아주어 감사하죠.

새댁식육점에서는 어떤 고기를 취급하고 있는지 대표 메뉴를 소개해주세요.
저희 매장은 단순합니다. 소고기는 한우, 돼지는 암퇘지만 들여오거든요. 30년 동안 이 원칙은 변함없이 지켜오고 있어요. 소고기의 경우 국내산이라고 해도 한우와 육우는 완전히 다르거든요. 헷갈리거나 속아서 살 일이 없도록 정직하게 오직 한우만 팔고 있습니다. 주로 창녕, 경산, 김천의 도축장에서 바로 가져와 직접 발골을 합니다. 유통 단계를 줄인 만큼 손님들에게 덤을 드릴 수 있는 여유가 생기죠. 암퇘지의 경우 65~70kg 사이로 골라 부위별로 발골을 해놓으면 뿌듯하죠. 발골 작업은 3~4일에 한 번씩 하는데 ‘내가 살아있구나’를 느끼는 순간이에요. 힘들다고 생각한 적은 없습니다.

새댁식육점은 ‘헌혈증 가져오면 고기 드립니다’라는 현수막 때문에 더 특별해 보입니다. 어떻게 시작한 활동인지 소개해주세요.
2008년도 즈음 TV에 피가 모자란다고, 수혈을 부탁하는 자막이 흘러나왔어요. 생각난 김에 집에 있는 헌혈증을 찾아보니 꽤 되더라고요. 동생은 150번 정도 헌혈을 하기도 했고요. 집에 두는 건 의미가 없어 구청에 문의한 끝에 동구자원봉사센터에 기부하게 되었는데요. 손님들도 함께 참여하면 좋겠더라고요. 그래서 헌혈증 하나에 돼지고기 한 근을 드린다고 붙여두었죠. 초반에는 집에 박혀있던 60~70년대 헌혈증이 많이 들어왔는데 요즘에는 젊은 친구들도 많이 와요. 학기 초에 대학 앞이나 먹자골목에 현수막을 붙여두기도 하거든요. 1년에 350~400장 정도 들어옵니다. 벌써 15년 정도 이어온 것 같네요.

1년에 400근의 돼지고기가 그냥 나가는 셈인데요. 부담은 없으세요?
그런 생각은 해본 적 없어요. 누군가는 해야 하지 않겠어요? 나눔의 바이러스는 많을수록 좋잖아요. 1년 치 헌혈증을 모아 기증도 하지만 헌혈증을 얻으러 직접 오는 분도 계세요. 한 번은 심장이식수술한 청년이 재수술을 앞두고 찾아왔어요. 헌혈증 90장을 내어줬죠. 그 친구가 어느덧 30대 초반이 되어 부산에서 자영업을 하고 있는데요. ‘저도 돈 많이 벌어 대표님처럼 베푸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전화를 주더라고요. 뭉클했습니다.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백혈병을 발견해 헌혈증을 가져간 친구도 있고요. 이만하면 고기를 내줄 가치가 충분하지 않나요.

자원봉사자 할인, 경로당 기부 활동도 꾸준히 이어가신다고요.
봉사활동을 50시간 하면 자원봉사증이 나오는데 그 증을 보여주면 10% 할인해줍니다. 경로당의 어르신들은 다 저희 가게 단골이셨거든요. 고마운 마음을 담아 올해도 어버이날 즈음에 130~40만 원어치 고기를 드렸습니다. 다들 돈 버는 것보다 봉사하는 게 많다고 걱정해주시는데요. 저는 이게 즐거움이에요.

백년가게로 선정된 만큼 새댁식육점의 내일이 더욱 기대되는데요. 앞으로의 계획과 목표가 궁금합니다.
백년가게 선정으로 30년 동안 속이지 않고 정직하게 장사한 시간을 인정받은 것 같아 뿌듯했습니다. 둘째 딸과 사위가 배우고 있는 만큼 앞으로 길게 이어가야죠. 앞으로 저의 숙제라면 저희 가게뿐 아니라 평화시장 전체의 상생과 발전입니다. 어르신들이 많은 재래시장이라 노후화되고 다변화가 안 되고 있는데요. 젊은 친구들도 유입이 되어 활기를 띨 수 있도록 변화를 이끌어볼 생각입니다. 인근 닭똥집골목과의 상생 방안도 고민해보고요. 저는 ‘나’라는 단어보다 ‘우리’라는 단어가 좋더라고요. 함께 잘 살아야죠. 그게 언젠가는 다 제 복으로 돌아오더라고요.

대구 새댁식육점

· 주소 | 대구 동구 아양로 53-9 1층(평화시장)
· 전화 | 053-956-8413
· 영업시간 | 07:30~22:00(일요일에는 12:00 오픈, 설/추석 휴무)
· 주요메뉴 | 한우 및 국내산 돼지고기 각 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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