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이 켜진 하얀 판 위에 이리저리 뿌려져있던 모래들이 몇 번의 손길로 바다가 되었다 산이 되고, 해가 되었다 달이 된다. 한 줌의 모래로 연필과 펜 못지않은 섬세함을 표현하는 샌드애니메이션(sand animation)이다. 평범한 전업주부에서 샌드아티스트로 변신한 박은수 대표를 만나 모래와 빛, 손짓으로 건네는 이야기를 들어본다.
예술장르로 자리 잡은 샌드애니메이션
샌드애니메이션(sand animation)은 ‘sand’와 ‘animation’의 합성어로 빛과 모래를 이용해 이야기를 전달하는 예술분야이다. 현재, ‘샌드공감’이라는 프로덕션을 운영하며 업계에서 인정받는 샌드아티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박은수 대표는 “빛이 나오는 라이트박스 위에 음악에 맞춰 모래로 그림을 그리며 이야기를 전달하는 예술장르”라고 샌드애니메이션을 정의한다. 2002년 헝가리 출신 ‘페란카코’ 감독을 통해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샌드애니메이션은 TV광고와 다큐멘터리 방송을 통해 대중에게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했다. 2010년 초반 샌드애니메이션 아카데미가 개설되면서 전문적인 작가들이 늘기 시작했고, 본격적으로 많은 사람에게 익숙한 예술장르로 자리 잡게 되었다. 현재는 공연, 축제, 음악회 등 다양한 문화예술분야에서 활용되어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있다.
40대 후반 전업주부, 모래에 반하다
박은수 대표는 어릴 적부터 유독 무언가를 만들고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하지만, 그가 마주한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부모님의 뜻에 따라 일찍 가정을 꾸린 박 대표는 늘 자신의 꿈보다 남편과 아이들이 우선이었다. 고단한 전업주부의 삶에서 꿈을 꾸는 건 사치였다. 그런 그가 모래를 만나게 된 건 두 아들이 사춘기를 지나고 나서부터다.
“아이들이 크기 전까지는 다른 주부들과 마찬가지로 살림을 천직이라 생각하며 지냈어요. 하지만 마음 한구석엔 배움에 대한 미련이 있었죠. 처음엔 단순히 ‘관심 있던 것들을 하나씩 배워보자’는 생각으로 의상디자인, 홈패션, DIY 등 다양한 분야에 도전했어요.”차근히 실력을 쌓아가던 그는 자연스레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하지만 40대 후반 경력단절 주부에게 손을 내미는 곳은 많지 않았다. 그를 둘러싼 나이, 경력, 가정 등은 생각했던 것보다 큰 짐으로 다가왔다. 한계에 부딪혔다고 느꼈을 무렵, 그는 우연히 TV 속에서 샌드애니메이션을 접했다. 라이트박스 위에서 모래로 그림을 그려가며 이야기를 전하는 모습에 첫눈에 매료됐다.
“샌드애니메이션은 나이나 경력이 중요해 보이지 않았어요.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며 자유롭게 내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일이라면 잘 해낼 수 있겠다는 확신이 있었죠.”당시 우리나라에서 샌드애니메이션는 지금보다 더 생소한 분야였다. 그렇기에 전문적으로 배울 수 있는 통로가 마땅치 않았다. 무작정 우리나라 샌드애니메이션 1세대 최은영 작가를 찾아가 처음 모래를 만났다. 이후 유튜브 영상과 외국작가의 작품을 찾아보며 실력을 쌓은 박은수 대표는 2012년 KBS ‘현장르포 동행' 영상공모전에서 당선되며 입지를 다져갔다. 그 시기 최은영 작가의 제안으로 기획사이자 아카데미에서 강사와 샌드애니메이션 작가로 활동하게 되었다.
시행착오로 한 단계 성장하다
아카데미 생활은 유익했다. 누군가를 가르치고, 동료를 만드는 기쁨은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행복이었다. 다만, 해야 할 일이 명확히 정해져있고, 할 수 있는 일이 제한적인 직장생활에 대한 염증이 있었다. 박은수 대표는 “여느 직장과 마찬가지로 회사 안에서 온전히 제 색깔을 드러내기에 한계가 있었다”며 “나만의 예술을 만들어가고 싶었다”고 말했다.
2016년 1월, 박 대표는 직장을 나와 ‘샌드공감’이라는 1인 프로덕션을 창업했다. 초기에는 시간을 자율적으로 조절할 수 있고, 혼자만의 작업시간을 가지며 여러 시도를 해볼 수 있었다. 하지만, 1인 기업 특성상 모든 부분을 혼자 해결해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었다.
“샌드애니메이션은 회화적인 요소뿐만 아니라 그에 어울리는 배경음악과 영상효과, 편집기술 등이 필요하기에 많은 일을 소화하려다 보니 여유가 없었어요. 게다가 직장생활에서 경험하지 못한 홍보나 세금문제도 합쳐져 여러 시행착오를 겪었습니다. 하루를 분 단위로 쪼개가며 생활했지요.(웃음) 돌이켜보니 지난 2년의 시간은 현재의 나를 위한 훈련 기간이었다고 생각해요.”
박 대표는 “자유롭게 일하고 싶다는 단순한 생각으로 기본지식도 없이 시작하여 어려움을 겪었다”며 “하지만 묵묵히 작품 활동을 해온 결과 현재는 안정된 수익과 그동안의 경력들이 큰 바탕이 되어 즐겁게 일하고 있다”며 미소 지었다.
나를 웃게 만드는 일을 찾아서
결혼이나, 임신 육아 등의 이유로 경력 단절된 여성들은 바늘구멍같이 좁은 문의 취업 대신 창업으로 시선을 돌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특별한 기술도 자본도 없는 이들이 사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은 한정적이다. 실제로 이들을 위한 양질의 일자리는 드문 것이 현실이다. 박은수 대표는 “돈이 많은 사람이나 경력이 많은 사람만 창업을 할 수 있다는 고정관념을 버려야 한다”며 “너무 거창하게, 완벽하게 준비해서 시작하려고 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저 같은 가정주부도 했잖아요. 대신 시작만 하면 잘 될 거란 생각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각오로 시작하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맹목적 성공이 목표가 아닌 자기 개발과 발전을 위해 노력한다면 어느 순간 성공은 가까이 와있을 겁니다.”
박은수 대표는 일을 하는 데 있어 ‘행복’과 ‘만족감’을 강조했다. 그는 “사업을 위한 아이템과 내가 좋아하는 창업 아이템은 퀄리티 측면에서 완전히 다르다”며 “작은 일이라도 좋아하는 일을 하게 되면 롱런할 수 있는 지속적인 동기 유발이 되고, 결국 성공률이 높아진다”고 강조했다. 창업을 목표로 삼기보다는 본인이 좋아하는 일을 통해 지속적으로 동기를 유발하는 능동적인 수단으로 여기라고 설명했다. 창업한 뒤 돈과 명예를 얻는 성공을 이뤄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버리고 좋아하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 오히려 더 잘 풀릴 것이라는 얘기다.
스토리텔링으로 경쟁력을 확보해야
누구에게나 스토리는 존재한다. 각자 자신만의 이야기가 있는 것처럼 기업이나 브랜드 역시 숨겨진 이야기가 존재한다. 하지만 스스로 그 이야기를 발견하기란 생각처럼 쉽지 않다. 그렇기에 박 대표는 일상에서 늘 아이디어를 찾으려 노력한다.
“스쳐 지나갈 수 있는 것들을 관심 있게 지켜보고, 그 안에 담긴 의미들을 찾아내는 연습합니다. 표지판이나 간판, 포스터들을 보면 한 프레임 안에 많은 이야기를 함축적으로 담아내고 있어요. 그 안에 담긴 의미를 생각해보며 새로운 이미지와 이야기가 떠오르곤 합니다.” 바야흐로 지금은 스토리텔링 시대다. 샌드애니메이션도 그림 실력 못지않게 ‘스토리텔링’이 중요하다. 단순히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가 있는 움직이는 예술이기 때문이다. 박 대표는 “샌드애니메이션의 경쟁력은 스토리에 달려있다”고 강조했다. 각자의 특성에 맞는 이야기를 개발할 때 다양성이 확보된다는 지론이다.
샌드애니메이션이 주연이 되는 날까지
공연이 끝난 후 관객들이 직접 무대 뒤를 찾아 ‘너무 좋았다’, ‘감동적이었다’고 이야기할 때 보람을 느낀다는 박은수 대표. 때로는 웃고, 때로는 눈물을 흘리는 감성적인 예술이기에 관객의 호흡이 느껴질 때 늘 뿌듯하다. 그렇기에 작품을 준비할 때 사소한 실수도 발생하지 않도록 완벽히 준비하는 데 더욱 힘쓴다.
“현장에서 직접 퍼포먼스를 진행하는 라이브 공연들은 공연환경이 매번 다르기 때문에 항상 긴장하게 됩니다. 특히 야외공연의 경우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아 늘 불안하죠. 하지만 어떠한 변수에도 진심과 노력이 전해진다면 성공한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세월이 흘러도 부끄럽지 않은 작품을 만들자’는 생각으로 모래를 대합니다.”
오랜 역사가 있는 예술장르와 비해 샌드애니메이션은 아직도 발전 가능성이 무한하다. 현재, 다양한 매체가 등장하고 있는 만큼 활용분야에 대한 전망이 밝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샌드애니메이션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작가는 대략 30여 명뿐이다. 박은수 대표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손에 꼽을 만큼 적은 인원으로 활동했는데, 해가 바뀔수록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며 “훌륭한 작가들이 많이 나와서 더욱 대중화되고 발전하는 예술장르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더불어 그는 현재 콘서트나 음악회 등에서 대부분 공연의 조연으로 쓰이는 샌드애니메이션이 가까운 미래에는 공연을 주체적으로 이끄는 주연이 되는 무대를 만들고 싶다는 소망을 드러냈다.
글 김청미 / 사진 조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