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김금숙 FM: 강북지점 청계점에서 프레시 매니저로 활동 중인 김금숙입니다. 만 75세이고, 벌써 활동한 지 44년 차(535개월)나 되었네요. 한결같이 동대문 일대의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Q. 1979년 8월에 입직하여 현재까지 44년 차. hy 역사의 산증인이라고 해도 무방한데요. 과거의 프레시 매니저는 어떠했을까요?
김금숙 FM: 주변에서 저를 보고 ‘프레시 매니저 창립 멤버’라고 합니다. 당시 야쿠르트는 25원, 짜장면은 140원의 가격으로 기억합니다. 제품 수도 지금과 크게 차이나고요. 방판 조직이 형성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야쿠르트를 입소문 내는 데 최선을 다했습니다. 물론 전달 용구도 변화했습니다. 지금은 냉장 카트가 보급됐지만, 초기엔 캐링카(손수레)였습니다. 폭설이 내린 날에는 언덕을 올라가기 어려워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납니다.
Q. 당시 hy 프레시 매니저를 직업으로 선택한 이유가 있을까요?
김금숙 FM: 여성들의 사회 진출 기회가 적었습니다. 당시 생산공장, 봉제공장, 보험영업 등이 전부였습니다. 아들 2명을 돌봐야 해서 탄력적인 시간 조절이 가능한 직업을 선택해야만 했습니다. 그때 동네 프레시 매니저가 눈에 들어왔죠. 새하얀 장갑에 노란 옷을 입은 모습이 너무 예뻐 보여, 곧바로 면접을 보고 일을 시작했습니다.
Q. 근무 첫 달, 수수료를 받았을 때 어떤 기분이 들었나요?
김금숙 FM: 쌀 한 가마니부터 샀습니다. 제 힘으로, 제 돈으로 산 쌀로 밥을 지었습니다. 너무 뿌듯하고 행복했답니다.
Q. 44년간, 한 직장에서 꾸준히 일을 할 수 있게 한 동력이 있다면요?
김금숙 FM: 지금 돌이켜보면 내 젊은 시절의 전부였습니다. 사소한 것일지라도 목표를 계속 설정했습니다. 처음엔 남의 집에서 세를 살았습니다. 내 집이 없는 게 서러웠지만, 딱 10년을 노력하여 내 집 마련에 성공했습니다. 자식들 대학과 장가도 보냈습니다. 그렇게 20년, 30년, 40년이 훌쩍 지나버렸어요. 그러는 동안 저도 동대문 마당발로 불리게 되었죠. 매일 꾸준한 인사와 정갈하게 유니폼을 입은 모습을 고객에게 보여주면서 신뢰를 얻은 것 같습니다.
Q. 근무 일수 약 1만 6천 일, 항상 같은 모습을 유지하는 게 가능한가요?
김금숙 FM: 사실 불가능합니다. 저도 바닥에 주저앉아 많이 울기도 했어요. 하지만 저를 반겨주는 고객을 보면서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어느 날 남편이 제게 말했어요. “너는 겨우 야쿠르트 배달을 가는데 꼭두새벽부터 무슨 화장을 그렇게 하냐?”라고요. 저는 “남들이 아닌, 고객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그렇다”라고 답했습니다. 지금껏 단 한 번도 결근한 적 없이 성실하게 근무하고 있습니다.
Q. 고객들과 사이는 어떠한가요?
김금숙 FM: 친하다는 말은 통하지 않을 것 같고, 정말 각별합니다. 가족이라 생각하고, 고객들도 그리 생각할 것 같아요. 1979년에는 8살 남자아이가 야쿠르트를 그렇게 좋아했습니다. 그 고객이 지금 50살이 넘었고, 아직도 우리 제품을 먹습니다. 얼굴만 봐도 오늘 기분이 어떠한지 알 수 있어요. 이젠 담당구역에서 프레시 매니저님이 아닌, ‘엄마’ 또는 ‘어머니’로 불린답니다.
Q. 오랫동안 수많은 고객을 만나본 것 같다. 혹시 본인만의 영업 비결도 있다면요?
김금숙 FM: 저를 떠나간 고객도 되돌아봅니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먹을 줄 안다고 하잖아요. 새로운 신제품이 나오거나 행사가 있을 때마다 고객 한 명 한 명 이름을 부르며 다시 연락합니다. 물론 안부도 묻죠. 그런데 반응은 매우 긍정적입니다. 현재 정기구독 고객은 160여 명입니다.
Q. 앞으로의 이루고 싶은 꿈과 목표가 있다면요?
김금숙 FM: 지금은 욕심과 목표는 내려놓았습니다. 요즘 신입 FM들이 입직하면, 40여 년 전 제 모습을 보는 것 같습니다. 그들이 다치지 않게 노하우를 알려줍니다. 최근 매출 400만 원에서 1000만 원까지 신장시킨 신입 FM이 있습니다. 저보다 잘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성장하는 모습을 바라보면 너무 행복합니다. 앞으로도 후배들을 육성하며 힘닿는 데까지 일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