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공감共感

신발에 재미를 디자인하죠
헬레나앤크리스티

CF H&K - 고인희,홍혜원 대표

신발에 재미를 디자인하죠

돌체&가바나, 빅터&롤프, 반클리프&아펠 등 듀오 디자이너가 각자의 이름을 내걸고 세상에 내놓은 브랜드는 남다른 자신감과 풍성한 이야기를 기대하게 한다. 슈즈 브랜드 헬레나&크리스티(이하 H&K)도 마찬가지다. 두 여성 디자이너가 2010년 론칭한 H&K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살린 독특한 개성으로 존재감을 키워왔다. 잠실 월드타워 에비뉴엘 H&K 매장에서 만난 크리스티 고인희 대표는 때론 우아하게, 때론 역동적으로 변화해온 10년을 이야기한다. 멋과 재미가 공존하는 H&K의 슈즈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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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타포르테에서 눈도장
독특한 슈즈디자이너의 등장

H&K는 2009년 9월, 프랑스 프레타포르테 파리 박람회에서 첫 선을 보였다. 디자이너라면 누구나 한 번쯤 꿈꾸는 세계적인 무대에서 데뷔를 한 셈이다. 여성스러움을 한껏 강조하면서도 기존의 틀을 한번 비틀어 개성있는 장식을 더한 H&K의 신발은 단숨에 시선을 모았다.

“ 사실 참가 자체에 큰 의미를 둔 도전이었어요. 헬레나인 홍혜원 대표나 저나 한번쯤은 내가 만들고 싶은 대로 맘껏 디자인해보자는 꿈이 있었거든요. 스스로에게 주는 선물이라 생각하고 만든 제품으로 쇼에 선 것만으로도 흥분됐죠. 그런데 갤러리 라파예트로부터 첫 오더까지 받은 거예요. 즐겁게 만든 우리의 유니크한 디자인이 세계적으로 통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얻었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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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희 대표는 10년 전, 그 짜릿했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에스콰이아, 소다 등 국내 유명 제화브랜드에서 내공을 쌓아왔던 그가 자신의 이름과 개성만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은 것이다. 함께 발을 맞춘 홍혜원 대표는 해외파로 이탈리아 유학 후 돌체&가바나에서 4년간 슈즈 디자이너로 일하다 한국으로 들어와 고인희 대표와 인연을 맺었다. 성공적인 의기투합 후 2010년, 둘은 자신의 영문 이름을 딴 H&K를 론칭하고 매장을 열었다.

“ 초기의 브랜드 컨셉은 Glamour&Twist를 바탕으로 했어요. 여성성을 강조해 굉장히 높은 하이힐에 평범함을 거부한 장식 요소가 많이 가미되었죠. 현재는 트렌드에 발맞춰 캐주얼 감성을 더한 ‘Life for Fancy’를 추구합니다. 여성성은 유지하면서 재미를 가미한 장식을 많이 선보이고 있어요. 입술이나 눈 모양 심볼이 어우러지고, 초현실주의 모티브도 과감하게 활용하죠. 반짝이고 화려한 쥬얼리 슈즈도 인기가 많습니다. ”

그래서일까. 매장에 진열된 H&K의 제품은 신발이 아니라 작품을 보는듯하다. 스니커즈의 발등에 화려한 비즈 장식이 박혀있고, 구두 굽에 박힌 진주에 시선이 쏠린다. 흔하지 않아 매력적이고, 대중적이지 않지만 마니아층은 확실히 확보한 H&K. 백화점 중심으로 9개 매장을 보유하고 있는 H&K는 바니스 뉴욕, 바니스 재팬, 하비니콜스 홍콩 등에서도 만나볼 수 있다. 프레타포르테 무대에서처럼 이들은 여전히 ‘맘껏’ 디자인하고 있는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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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오 디자이너의 시너지
디자인과 경영의 이원화

새로운 브랜드는 꾸준히 생겨나지만 오래가는 이름은 그리 많지 않다. 헬레나와 크리스티. 개성 강한 두 디자이너가 10년 동안 견고하게 브랜드를 키울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고인희 대표는 뚜렷한 역할 분담을 말한다.

“ 브랜드를 가지고 사업을 이끌기 위해서는 다각도의 시선이 필요하잖아요. 초창기 둘 다 디자인에만 몰두할 때는 한 쪽으로 치우쳤어요. 좋은 디자인을 고객들에게 선보이고 싶다는 욕심만 앞섰죠. 원가 줄이는 건 생각하지 않고 예쁜 것만 찾다보니 늘 궁핍했습니다. 사업적으로 무지한 채 뛰어든 모든 디자이너 브랜드의 어려움이죠. 다행히 저희는 중간에 역할 분담을 했습니다. 창의적이고 이상적인 헬레나는 디자인을 책임지고, 국내 시장을 잘 알고 현실적인 저는 경영을 맡기로 한 거죠. ”

각자의 장점을 살려 디자인과 경영의 균형을 찾아가던 H&K는 2018년 5월, 코웰패션에 인수되어 더 큰 도약을 꿈꾸게 되었다. 소규모 디자이너 브랜드가 가지는 한계를 뛰어 넘어 더 넓고 다양한 시장 진출을 꿈꿨던 H&K에게 놓칠 수 없는 기회였다.

“ 대부분의 디자이너 브랜드는 키우는 걸 두려워하죠. 우리는 그렇지 않았어요. 현실에 안주하여 작게만 머무르는 게 아니라 꾸준히 규모를 키워나간 것이 생존의 비결 아닐까요. 두려움 없이 계속 투자하며 매장을 늘려왔거든요. 좀더 성장하고 싶을 때 코웰패션이 손을 내밀어 인수를 추진하게 되었습니다. 경영의 전문성을 키우고 사업을 다각화하는 데 큰 힘이 되고 있지요. ”

야심차게 시작한 스타트업이나 소기업이 인수를 통해 더 큰 기회를 얻는 사례는 많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자칫 정체성을 잃고 본연의 경쟁력이 사라지는 경우도 있다. 고인희 대표는 H&K 브랜드의 정체성을 지켜주고 두 디자이너의 필요성을 강조했기에 이를 수 있었던 인수였다고 강조한다. 이를 증명하듯 코웰패션의 종속회사로 편입된 후 CFH&K로 법인명은 변경했지만 고인희, 홍혜원 대표 체제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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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는 디자인의 힘
H&K에서 ‘HEI × KOI’까지

바니스 뉴욕 매장에서도, 홍콩 하비니콜스 매장에서도, 바니스 재팬 매장에서도 만날 수 있는 H&K의 신발. 해외 진출의 길은 우연히 열렸지만 기회를 끌어낸 힘은 오롯이 H&K의 개성 강한 디자인에 있었다.

“ 서울패션위크에 나갔다가 첫 번째 쇼에서 주문을 받게 되었어요. 저희 제품의 독특함에 끌린 모습이었습니다. 평범한 디자인이 아니라 H&K의 개성이 완전히 녹아든 제품만을 뽑아가더라고요. 바니스 뉴욕에 진출하게 된 계기죠. 이후 홍콩에서도 연락이 왔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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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난한 디자인으로 적당히 타협했다면 쉽게 오지 않았을 기회였다. 고인희 대표는 개성을 살리면서도 트렌드를 놓치지 않는 것을 가장 큰 강점으로 꼽았다. 날렵하고 화려한 색상의 하이힐과 캐주얼한 어글리 슈즈가 공존하지만 둘 사이에는 분명한 연결고리가 있다. 화려하고 위트있는 장식이 H&K 브랜드의 정체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다채로움 속에 일관성이 녹아있는 매장의 신발들은 H&K의 숱한 도전과 변화를 고스란히 대변한다.

“ 좀더 캐주얼하고 친근하게 만날 수 있도록 세컨드 브랜드 ‘HEI×KOI(헤이앤코이)’도 론칭했어요. 스포티하고 위트있고 젊은 감각이 돋보이죠. 20대부터 트렌드에 민감한 40대까지를 두루 아우르고 있고, 10~20만원 중반의 합리적인 가격대로 다가가려고 합니다. ‘Life for Fancy’를 추구하는 만큼 재미있는 걸 계속 보여주고 싶어요. ”

재미의 영역은 구두에만 국한되지 않다. 고정관념을 깨고 선보인 브로치를 단 양말의 인기는 기대 이상이었다. 고인희 대표는 지갑과 클러치 등 스몰레더 굿즈뿐아니라 가방과 선글라스까지 아이템의 다각화를 야무지게 꿈꾸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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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라인 시장의 위기
명품 온라인숍 진출로 돌파

“ 늘 위기는 감지하고 있어요. 매장을 운영하는 분들이라면 모두 느끼는 게 현재 오프라인 시장 상황이 정말 힘들다는 겁니다. 명품은 오프라인에서도 잘 팔리지만 중간에 자리잡은 국내 브랜드는 위기입니다. 그 안에서 길을 찾는 게 가장 중요한 숙제에요. H&K 브랜드의 프리미엄은 지키면서 온라인에 어떻게 안착할 것인가를 가장 고민하고 있습니다. ”

고인희 대표는 가장 어려운 시기를 ‘지금’이라고 꼽는다. 무너지는 오프라인 시장에서 빠져나와 온라인 시장에서 발 빠르게 돌파구를 찾는 중이다. H&K는 명품 브랜드 세일 온라인숍 ‘파페치(Farfetch)’, 여성 브랜드 명품 편집숍 ‘네타포르테(Net-A-Porter)’ 등 프리미엄 명품 온라인숍에 진출해 글로벌로 뻗어간다는 계획이다. ‘HEI × KOI’는 홈쇼핑을 통해 고객에게 좀 더 가깝게 다가갈 예정이다.

“ 변화가 곧 살 길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면서도 H&K의 색을 잃지 않는 게 중요하겠죠. 사업 다각화를 위해 H&K 뷰티 라인도 론칭했어요. 틴트, 립스틱, 팩트를 만나볼 수 있는데요. 글로시하면서 여성성이 강한 게 특징이죠. ”

트렌드를 만들어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 늘 변화를 고민하는 H&K 고인희 대표다. 좋은 신발은 좋은 길로 인도한다고 한다. 우아함 속에 재미를 숨겨둔 H&K와 함께라면 좀 더 즐거운 삶을 기대해도 되지 않을까. 고인희 대표는 오늘도 눈부신 신발을 신고 성큼성큼 앞서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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