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꿈나무어린이도서관 최보기 관장은 사람들에게 책을 소개하는 전문 북 칼럼니스트로 여러 신문과 잡지에 ‘최보기의 책보기’라는 이름으로 좋은 책들을 소개하고 있다. 젊은이들이 꼭 읽어야 할 책을 소개한 서평 모음집 ‘놓치기 아까운 젊은 날의 책들’과 에세이집 ‘거금도 연가’, “박사성은 죽었다’를 낸 작가이기도 하다.
일요일의 인문학 어쩌다 어떤 시를 처음 읽다가 ‘아! 시란 바로 이런 것이구나’라는 감탄이 절로 나올 때가 있다. 나에게는 ‘대추 한 알’이라는 시가 그랬다.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 저 안에 태풍 몇 개 / 저 안에 천둥 몇 개 / 저 안에 벼락 몇 개 /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 저 안에 초승달 몇 날”
이 시를 알고부터 장석주 시인을 좋아하게 됐다. 책을 읽는 이유는 너무 많고 각자마다 다르다. 나는 무엇보다 시공간을 초월해 땅 위에서는 만나기 불가능하거나 어려운 세계의 고수들과 얼마든지 ‘독대’할 수 있다는 것 때문에 독서를 좋아한다. 삶을 깊이 통찰한 대가와 차를 마시며 오랫동안 담소를 나눌 수도 있고, 나만을 위한 특강을 들을 수도 있고, 만취하도록 함께 술잔을 기울이면서 인생을 논하기도 하는 것이다. 내가 보내주지 않으면 그는 나를 떠날 수 없다는 것 역시 독서가 주는 혜택이다. 그런 면에서 고수들의 ‘산문집’은 창작이나 논픽션을 앞선다.
살기 위한 노동으로 방전된 에너지를 재충전하는 ‘할랑할랑한 일요일’을 위해 썼다는 ‘일요일의 인문학’ 역시 만나기 쉽지 않은 장석주 시인과 깊은 대화를 해보고 싶어서 서재로 불러들였다. 그와의 가을 밤 대화가 깊어지면서 언젠가 읽었던 어느 대가의 글쓰기 훈시? 당신이 쓴 글을 읽고 누군가는 위로를 받고 또 누군가는 죽을 수도 있다. 이래도 함부로 글을 쓰겠는가? 목숨을 걸고 써라-가 불현듯 떠올랐다. 한 문장 한 문장 정성을 다하려는 시인의 배려와 의지가 뚜렷해서다.
1979년 신춘문예로 등단했던 그는 지금 “경기도 안성의 호숫가에 있는 수졸재와 서울의 작업실을 오가며 ‘읽고, 쓰고, 사유’하는 삶을 꾸리고 있다.” 그가 하는 일 중 ‘읽기’가 가장 먼저라는 것인데 그가 도대체 얼마나 많은 세계의 책들을 읽었는지는 일요일의 인문학이 여지없이 증명한다. 수 많은 대가들의 통찰들이 힘들고 지친 사람들을 격려하고 힘을 주려는 시인의 손끝에서 되살아나 쉬우나 깊은 문장으로 가슴을 덥힌다. 진정한 일요일의 자기계발서다.
운동이든 노동이든 걷지 않는 사람은 없다. 나 역시 책 읽을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웬만하면 대중교통을 이용하기에 많이 걷는다. 그동안은 그냥 걸었다. 그런데 이 책 속의 ‘나는 산책자다’라는 글을 읽고서는 걷기에 대한 개념과 확신이 분명해졌다. “다리가 흔들어 주지 않으면 정신은 움직이지 않는다”는 몽테뉴의 ‘수상록’부터 랭보의 시까지 걷기예찬에 빠지다 보니 당장 책을 덮고 공원으로 달려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졌다. 이제부터는 일삼아, 분명한 개념을 탑재하고서 걷기를 즐기게 될 것 같아 가슴이 막 부푼다.
‘독서에 대하여’도 마찬가지다. 독서야말로 어제보다 더 행복하기 위한 방법이자 ‘몰입’의 오르가즘을 주는 명기임을 깨닫게 된다. ‘독서는 오랫동안 가만히 앉아 시간을 정면으로 직시하는 법을 가르치는 가장 뛰어난 도구’임을 확신케 되고, “책은 내면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한다” 했던 프란츠 카프카(이방인)의 말뜻도 깊이 헤아리게 된다. 읽다 읽다 더 읽을 만한 좋은 책 없나 두리번거리는 사람이라면 이 책 한 번 꼭 보시라! 세계의 책들이 흐드러진다.
<목차>
책을 내면서 4
사람은 별 여행자들이다 14
꿈을 노래하라 22
나는 산책자다 28
반짝이다가 사라지는 일상의 순간들 36
현대인은 왜 조용함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게 되었는가 45
도시를 걷다 49
삶을 견딘다는 것 56
재난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63
지금 멈추어 읽는 책이 남은 인생의 길이 된다 70
마음의 지리학 76
요리는 인류 진화의 불꽃 83
노년은 황금 연령의 세대 90
나이 들수록 철학 책을 읽고 시집을 가까이하라 96
소비의 식민지에서 저항하라 102
아침 예찬 110
일요일 115
여름의 빛 속에서 122
나는 왜 늘 바쁠까 132
피로에 대하여 139
여행의 끝 145
연애, 그 생명 충동 152
애완의 시대 158
재난 영화들이 여름에 몰리는 까닭 163
잘 가라, 여름! 169
사랑한다, 한글! 178
시작과 끝 184
독서에 대하여 192
인생이 일장춘몽 198
‘보다’라는 것의 의미 206
누이의 수틀 속의 꽃밭을 보듯 212
가족은 무릉도원이다 217
니체는 철학의 준봉이다 221
번역은 차이의 글쓰기다 228
고독을 거머쥐고 향유하라! 235
부드러움을 예찬함 243
마음의 생태학 250
불행한 가정은 나름나름으로 불행하다 258
바깥으로 내쳐진 자들 263
갈매나무 269
웃어라, 행복해질 때까지! 276
여행을 권함 284
호모 노마드: 떠도는 인류의 시대 290
‘꿈’과 ‘불가능’에 대하여 298
금서란 무엇인가 307
리영희의 금서들 315
독서예찬 322
변신은 비상의 날갯짓이다 328
백거이 시를 읽는 밤 338
동짓달을 코앞에 두고 343
섣달, 나를 돌아보는 시간 348
오늘을 붙잡아라! 352
올봄엔 잊을 수 없는 인생을 살자 3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