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가리골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이 '한국최고의 트레킹코스'이다. 산과 계곡 그리고 숲이 적당히 잘 어울리고 쉽지도 어렵지도 않은 각양각색의 팔색조 같은 길로 이루어져 한 번 길을 걸어본 사람이면 누구나 이 수식어를 인정하게 된다. 특히 올해같이 무더운 여름에는 여름내내 기거하고픈 천상의 쉼터이다.
강원 인제의 방태산 기슭에 숨어있는 산마을을 삼둔사가리라고 부르는데 3개의 둔과 4개의 가리가 합쳐진 말이다. 3둔은 방태산 남쪽 내린천 상류에 있는 살둔, 월둔, 달둔을 일컫고 4가리는 방태산 북쪽 방태천 계곡에 위치한 적가리, 아침가리, 연가리 그리고 방태산 동쪽에 있는 명지가리를 말한다. 둔은 둔덕, 가리는 계곡을 뜻하는 순우리말이다.
사가리 가운데서도 아침가리골은 가장 길고 깊어 유명하다. 이 골짜기는 아침나절에만 밭을 갈 수 있다 해서 아침가리라는 이름이 붙혀질만큼 산이 높고 계곡이 깊은 곳에 자리해 점심 숟가락 놓기가 무섭게 해가 저무는 계절이 일년의 반이나 될 정도라고 한다.
아침가리골의 특징은 정해진 길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흔한 길 안내 표지조차 없어 산악회 등에서 걸어놓은 띠를 따라 걷는 수 밖에 없다. 사람 발길이 난 데로 가면 된다. 계곡을 따라 첨벙첨벙 걸어도 되고 숲 그늘에 숨어서 걸어도 된다. 가끔 나타나는 험한 바위와 소(沼)는 돌아가면 그만이다. 길이 끊긴다 싶으면 계곡 건너에서 길을 찾으면 된다.
아침가리골 트레킹의 들머리는 보통 방동사거리에서 시작해 방동약수를 들러 아스팔트 포장도로가 끝나는 방동고개에서 한숨 고르고 조경동다리를 지나면서 본격적으로 아침가리골로 접어들기 시작한다.
그런데 방동사거리에서 포장된 임도를 따라 방동고개까지 가는 것이 보통 고역이 아니다. 지금은 찬바람이 불어 걸을만하지만 한여름 방동고개를 오르려면 뙤약볕에 1시간 정도 임도를 걸어야 해서 처음부터 진을 빼게 한다. 그러나 지칠 즈음 만큼의 거리에 있는 방동약수는 꿀물이다. 어느 착실한 심마니가 꿈 속 산신령이 알려준 자리에서 잎이 6개 달린 ‘육구만달(해발 800m 이상 되는 고지대에서 자란다는 800년 이상 묵은 산삼)’을 발견한 곳에서 솟는 영험한 약수가 방동약수이니 한모금 목을 축이고 힘을 내 다시 오르면 된다. 방동약수에는 각종 질병을 예방하는 미네랄이 풍부하고 사악한 기운을 쫓아내는 엄나무 성분까지 듬뿍 담긴 약수로 안내문에는 “탄산과 철분, 망간, 불소 등 다량의 미네랄이 함유되어 위장병과 소화기장애에 좋다”고 쓰여 있다. 맛은 약이라 생각하고 마시면 된다.(ㅎ)
방동약수로 목을 축이고 우측 울창한 숲속으로 잠깐 오르니 다시 방동고개로 향하는 콘크리트 임도가 보인다. 긴 콘크리트 임도도 짜증나는 길인데 방동고개에 작은 주차장이 있어 거기까지 가는 자가용과 사거리부터 방동고개까지 택시를 이용해 오르는 사람들도 있어 단차선 길에 매우 복잡하다. 차와 아스팔트길에 힘들게 방동고개에 오르면 비로소 흙길이 나타난다.
방동고개에서 잠시 숨을 고르며 안내 표지판도 보고 아침가리골로 접어들기 위한 채비를 갖춘다. 방동고개에서 약간의 내리막 흙길로 들어서 본격적인 걸음을 시작한다. 여기부터 조경동다리까지는 약 1시간을 가야하고 그 다리를 건너야 비로소 아침가리를 접할 수 있으니 쉽게 그 모습을 볼 수가 없다.
흙길로 1시간여를 걸었더니 드디어 계곡물이 보인다. 몸을 13번 틀어야 빠져나올 수 있는 아침가리골의 첫 인상은 고요함과 푸근함이었다. 소리없이 흐르는 물살도 그렇고 하늘을 담은 숲속 어항같다는 생각도 든다.
아침가리골을 상류와 하류로 나누는 조경동다리(조경동교)를 건너면 이제 본격적인 아침가리골 트레킹이 시작된다. 국내에 여러 유명 계곡들이 많지만 계곡 트레커들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는 곳이 아침가리골이다. 아침가리가 있는 홍천과 인제에 분포된 3둔4가리는 조선 후기 예언서 ‘정감록’에서 삼재불입지처(三災不入之處)의 비장처(秘藏處)로 꼽는 곳이다. 때문에 6.25전쟁 때도 국군과 인민군이 들어오지 않아 전혀 피해를 입지 않은 천혜의 은둔처이다.
조경동다리는 아침가리골 상류와 하류의 분기점이다. 사가리 중 가장 멋진 곳은 적가리, 가장 깊고 긴 골은 아침가리골로 한자 이름인 조경동(朝耕洞)보다 우리말인 아침가리가 더 어울린다. 아침가리골은 상류보단 조경동다리에서 방태천(진동계곡)과 만나는 합수곡까지 이어진 하류가 오히려 더 적막하고 고요한 자연미를 간직했다. 하류는 직선거리론 3km지만 구불구불한 곡선거리론 7km의 계곡 트레킹 코스다. 진동1교가 있는 갈터(진동1리) 마을회관까지 3시간 이상 걸리는 계곡 트레킹은 처음부터 바로 물속으로 들어간다. 지금부터 물속으로 또 물가 길로 13번이나 몸을 틀어야 오늘의 날머리에 도달한다.
아침가리골엔 물을 담은 담(潭)들이 지천이다. 물 속 돌들이 미끄럽고 또 물을 나와도 바위들이 미끄러워 끝나는 순간까지 조심해야 한다. 스틱은 꼭 가지고 걷는게 좋다. 계곡물은 구불구불 유유히 흐르며 제법 멋에 겨워 여유롭다. 옥빛 물색이 자욱한 ‘뚝밭소’엔 물놀이객들로 가득하다. 바위 점프대에선 날렵한 어는 산객은 다이빙으로 트레커들의 박수를 받기도 한다. 계곡을 걷다가 숲길을 걷다가를 반복하며 하류로 내려 간다. 산 속을 걷을 때는 피톤치드로 계곡의 물기를 정화시키고 나뭇잎에 부딪혀 한번 굴절되어 가끔 들어오는 햇빛은 반가운 손님이다.
골짜기는 완전 하류로 방태천과의 합수점을 향해 성큼 다가선다. 아침가리골 트레킹은 인제 군내버스의 종점인 기린면 진동리(갈터) 마을회관 앞에서 끝이 난다. 갈터마을 방태천 주변엔 캠핑을 나온 피서객들의 텐트촌이다. 마지막으로 발을 담궈 드디어 땅을 밟는다. 트래킹을 끝나고 올라오니 정자 앞에 놓인 비각이 눈에 띈다. 약 200여 년 전 이 마을 사람이던 엄경홍의 공덕을 칭송하는 공덕비를 담은 비각이다. 아침가리계곡에는 특별한 볼거리는 없다. 하지만 가는 교통편도 불편하고 걷는 길도 불편해 정말길을 좋아하는 트래커들만 찾는 우리 땅의 숨은 속살과 같은 곳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