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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녀딸 이름이 뭐더라‘

치매 전 단계, 경도인지장애

수년 전 은퇴한 60대 남성이 진료실로 찾아왔다. 언제서부턴가 물건을 놓고 다니는 실수가 잦아지고, 본의 아니게 약속을 어기는 일도 많아졌다. 그런 그를 두고 주변에서는 ‘건망증이 심하다’고 얘기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어느날 이씨는 손녀딸의 이름을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이 나지 않아 충격을 받고 의료기관을 방문해 치매검사를 받기로 했다. 인지기능검사, 신경심리검사, MRI 검사 등을 받은 결과 경도인지장애라는 진단을 받았다. 이씨는 현재 2년째 약물치료와 더불어 여러 가지 치매 예방 요법을 병행하고 있다.

가천뇌건강센터에서 지난 2013년 1월부터 2016년 10월까지 가천대 길병원에서 치매 진단을 받은 환자를 조사해봤더니 치매 전 단계에 해당하는 경도인지장애로 진단받은 환자는 14%인 1만3470명 이었다. 치매로 진행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경도인지장애 환자는 매년 증가추세에 있다. 지난 2013년에는 521명이었던 경도인지장애 환자는 2014년 4214명, 2015년은 4300명으로 증가했고, 2016년 10월 현재까지 4435명에 달했다.

경도인지장애(Mild Cognitive Impairment)는 쉽게 말해서 건망증과 치매의 중간단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치매에 비해서는 판단력, 지각능력, 추리능력, 일상생활 능력 등이 대부분 정상이지만, 단순한 건망증에 비하면 여전히 더 많이 잊어버리게 된다.

그러나 노인이 되면 일반적으로 기억력이 예전만큼 못하고, 활동이 예전만큼 활발하지 못한다. 하지만 경도인지장애는 일반적인 기억력 감퇴나 건망증으로 혼동하기 쉽다. 나이가 들면서 일반적으로 기억력이 감퇴되고 활동 영역에 제한이 생기기 때문에 겉으로 봐서는 단순한 건망증인지 경도인지장애인지 치매인지 구별하기 쉽지 않다. 경도인지장애의 주요 증상은 방금 있었던 일이나 최근의 일을 잊어버리는 단기기억력 저하가 대표적으로, 환자 들은 보통 이전에는 스스럼없이 하던 일도 잘 못하고, 계산 실수가 잦아지는 증상을 겪는다.

경도인지장애 단계에서는 본인이 치매라고 자각하기 힘들지만, 경도인지장애는 치매로 진행될 확률이 매우 높다. 미국의 메이요클리닉에 따르면 경도인지장애 환자 270명을 10년 간 추적 조사한 결과, 이들 중 매년 10~15%씩 치매로 진행됐으며 6년 간 약 80%의 환자가 치매로 발전했다. 따라서 경도인지장애 단계에서부터 정확한 진단을 통해 치매로 이어지는 건망증인지 아니면 단순한 노화로 인한 건망증인지를 확인하고 치료해야 한다.

모든 증상은 환자 본인뿐 아니라 가족이나 주변인들의 자세한 인터뷰와 함께 확인이 이뤄져야 한다. 상세한 신경인지기능 검사나 나이 및 교육수준 등을 감안한 진단이 이뤄진다.

최근에는 자기공명영상(MRI)나 양전자방출단층촬영(PET)을 이용한 뇌영상이 경도인지장애 환자를 찾는데 중요하게 활용되고 있다. 뇌기능 영상을 볼 경우 경도인지장애 환자의 치매로의 발전 가능 여부를 어느 정도 확인하는게 가능하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우리나라는 치매 환자도 빠르게 늘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65세 이상 인구의 치매 유병률은 지난 2012년 54만 1000명으로 전체 유병률은 9.18%에 이른다. 과거 2010년 47만 4000명으로 8.74%였던 것이 7만여명 증가한 것이다.

이 같은 증가 속도로 인해 치매 환자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해 2030년에는 127만명, 2050에는 271만명으로 20년마다 약 2배씩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경도인지장애 역시 매우 증가하고 있어 65세 이상 인구의 2012년 경도인지장애 유병률은 27.8%로 전체 노인 인구의 1/4을 넘었다. 따라서 실제 진료실을 오지 않더라도 경도인지장애를 앓고 있는 인구가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들이 조기에 의료기관을 방문해, 치매로 진행되는 것을 막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정신건강의학과 연병길 교수

진료분야
노인성 치매, 노년기 우울증, 불면

약력
서울대 의대
대한노인정신의학회 회장 (2004~2006)
현 가천뇌건강센터 소장
한국노인복지진흥재단 이사

출처 : 가천대길병원 전문의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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