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처음에 직장 생활을 할 때만해도 홍보나 광고가 어렵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홍보나 광고 담당자들의 능력이 단순 명료했습니다. 대상 미디어나 타깃 고객들의 숫자가 많지 않아 소수의 매체나 고객을 관리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담당자들의 스펙도 정해져 있었습니다. 신문방송, 언론홍보, 광고홍보 관련학과의 공부를 했던 전공자들이면 더 이상의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떻습니까? 대상 매체가 과거 소위 4대 매체라 불리던 오프라인을 벗어나 웹이라는 온라인 매체 그리고 SNS 마케팅 커뮤니케이션(마컴)까지도 해여 하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숫자로 늘어난 양적 증가는 물론이고 마컴 담당자들의 스펙도 복잡 다난한 만능 자격을 갖추기를 요구하는 세상으로 바뀌었습니다. 언론, 방송, 광고는 물론이고 웹 상의 기술까지도 필요하며 요즘은 빅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는 통계 능력과 최신 IT 기술 능력도 갖추는 매우 복잡한 스펙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보도에 의하면 중국이 어쩌면 하찮아 보이는 볼펜심(볼) 하나를 개발했다고 온 중국 언론이 난리 호들갑을 쳤습니다. 지난 2015년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 연간 업무보고에서 중국 경제 사령탑인 리커창총리는 ‘중국제조 2025’라는 제조업 업그레이드 계획을 추진하겠다고 선언했었습니다. 하지만 우주선까지 발사하는 중국에게 제조의 큰 콤플렉스가 하나 있었습니다. 아이러니 하게도 볼펜의 핵심인 볼펜심조차 독자 기술로 아직도 만들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에 따라 거의 2년 만에 중국 기업이 드디어 자체 개발했다고 인민일보가 떠들썩하게 보도를 하고 볼펜심에 쓰이는 스테인리스강선을 개발한 모기업 타이강부슈(太鋼不銹)의 주가가 순식간에 상한가를 기록하는 기현상(?)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하찮아 보이지만 볼펜심은 볼펜의 핵심 부품으로 마모가 적고 녹이 슬지 않으면서도 형질의 변형이 적어야 하는 고도의 정밀가공 기술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모나미가 1975년 볼펜심 국산화에 성공한 바 있습니다.
중국이 볼펜심 개발에 열광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중국은 세계 최대 볼펜 제조 국가이지만 그동안 볼펜심과 잉크는 일본, 독일, 스위스 등으로부터 수입해 쓰고 있어 대략 2달러짜리 볼펜을 수출할 경우 중국의 제조기업은 그 중 5%인 10센트 정도의 수익을 얻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니 이번 볼펜심 개발은 엄청난 수익 효과가 되는 것입니다.
마컴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뜬금없이 볼펜심 이야기를 한 이유가 있습니다. 제가 지난 15년 간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그리고 기업들의 마컴을 해주면서 느끼는 감정이 이 원칙과 벗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볼펜심이 핵심임에도 불구하고 다들 볼펜의 외형에만 집착하고 거기에 평가의 기준을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중국처럼 우린 2달러를 벌었다고 좋아하는 어리석음 뒤에 제조업의 핵심 경영인 정작 가장 중요한 수익은 보지 못하는 누를 범하고 있었습니다. 정부나 공공기관 중소기업 다 마찬가지였습니다.
우리나라 모나미가 볼펜을 생산한 것은 1963년부터이지만 볼펜심까지 자체 개발에 성공하기 까지는 무려 12년의 세월이 흐른 뒤인 1975년입니다. 12년의 세월을 중국처럼 한 것이지요. 지금 우리 중소기업의 마컴마인드가 똑 같습니다. 정작 중요한 볼펜심은 보지 못하고 볼펜의 외형에만 집착하고 또 그것을 성공이라고 착각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마컴에서 가장 흔하게 사용하는 용어가 있습니다. CRM (Customer Relationship Management)입니다. 고객 관계 관리라는 말인데 여기서 우리가 잘 봐야 하는 대목이 고객은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관리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고객들이 원하는 가치를 제공하라는 말입니다. 사족을 달자면 볼펜을 주지 말고 우리만의 볼펜심을 주라는 말입니다. 그럴 때 비로소 진정한 가치가 생긴다는 사실을 위의 장황한 설명에서 보셨습니다. 그러면 고객이 원하는 핵심 가치가 무엇일까요? 모나미가 볼펜을 12년 제조하고서야 개발했던 볼펜심처럼 우리 중소기업들의 마컴도 숙련의 개발 기간이 필요합니다.(현대에 중국은 기술 발달로 그 개발 기간을 모나미의 12년을 2년 미만으로 단축)
제 경험에 의하면 고객과의 진솔한 관계를 만드는데 집중력의 차이가 있겠지만 아무리 빨라도 1년 이상의 기간이 필요합니다. 중소기업의 특성상 오프라인의 대면(face to face)의 시간을 가지는 것보다는 온라인의 활동이 대부분이라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합니다. 정석이 이런데도 우리나라 중소기업들은 이런 사실에 제게 설득당하려 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설명을 하고 이해를 시켜도 뒤돌아서면 부정하고 다시 자신의 고집인 외형과 매출에만 집착을 합니다. 이렇게 해서는 고객이 원하는 가치를 찾아내기가 힘듭니다
성공하는 마컴은 외형을 중시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의 문제를 찾아서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토탈 솔루션을 제공하고 이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을 마컴의 활동으로 정의해야 합니다. 또한 경쟁사들도 다 하는 외형적 활동보다는 고객이 그동안 느껴보지 못 한 다른(차별화) 경험과 가치를 제공해야 합니다.
제가 거의 8년째 마컴을 해오는 중소기업이 있습니다. 이 중소기업의 CEO는 마컴을 시작할 때 제가 설득을 했고 그래서인지 우리 같은 작은 기업은 사람도 없고, 투자 자금도 없으니 한 10년 꾸준히 하면 우리 고객들이 진심을 알 것이라는 큰 마음으로 시작해서 지금까지 온 것입니다. 대기업처럼 엄청난 마컴 자금과 전담 인력과 부서가 있다면 대기업처럼 금방 브랜드 인지도가 증가하고 매출도 증가하겠지만(사실 대기업들도 금방 그렇게 되는 않습니다. 중소기업보다 시간이 줄 뿐이지) 중소기업은 겨우 한 명 인건비 정도의 투자로 그런 효과를 기대한다면 어불성설입니다.
하지만 이런 중소기업은 거의 없습니다. 아주 잘 참으면 2년, 거의 1년을 못 넘깁니다. 오프라인에서도 아는 사람과의 관계를, 더군다나 그들이 원하는 가치(나와 같은 공통점을 파악하거나 그들이 우선하는 것을 아는 것)를 파악하는데도 1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한데 하물며 온라인에서의 관계는 더더욱 긴 시간의 투자가 필요합니다. 머리로는 이런 사실을 인지하고 잘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 말대로 실행하는 중소기업은 거의 없습니다. 왜 이렇게 뭐가 안 나와? 그동안 무엇을 한 거야? 이런 상황이 98%에 가깝습니다.
2002년 제가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때 먼저 사업을 하다가 실패한 선배로부터의 말씀을 저는 아직도 기억합니다. 그래서 이제 그렇게 합니다. 그 선배 말씀이 “우리나라 기업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주지 않으면 마컴이 힘들어, 그래서 눈에 자신이 하는 일과 관련한 눈에 보이는 상품을 만들어 꼭 줘”라고 한 것입니다. 그 말씀 그대로였습니다. 외국의 유명한 에이전시들처럼 컨설팅을 받고 수억원을 주는 것은 인정하지만 저 같이 작은 기업들이 하는 컨설팅 같은 일은 인정 받기가 힘듭니다. 따라서 마컴활동에서도 눈에 보이는 상품을 주어야 이 작은 기업들은 인정을 받습니다. 제가 지금 반응형 고객소식 웹진을 만들어 드리는 것도 다 같은 이치입니다.
저는 어쩌면 소명처럼 우리 중소기업들의 마컴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1985년 전문지 기자 생활을 하면서 첫 출입처들이 구로공단, 성수공단, 장사동 등의 서울 지역과 수원, 구미 등의 작은 중소 부품기업들이 많았습니다. 당시 만났던 사장님들의 열정은 장인의 그것이어서 존경심을 가졌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어느 정도 능력이 되면 이 분들의 마컴을 도와 드리겠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런 생각이 지금 우리의 작은 중소기업들의 마컴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해는 하지만 너무 조급하고 과잉한 마음 때문에 중소기업은 마컴이 힘들구나하는 한계를 느낍니다.
제가 최근에는 주로 SNS를 통해 고객과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방법론을 드리고 있습니다. 그것이 중소기업에는 가장 적합한 마컴 툴이고 나름의 측정과 평가를 할 수 있어서 입니다. 여기서도 그런 과잉의 조금성을 봅니다. 시쳇말로 처음부터 무조건 고객에게 들이대는 방법을 주장합니다. 그래서는 바로 고객으로부터 외면을 받고 스팸의 대상이 된다고 아무리 설명을 해도 고개는 끄덕이지만 속마음은 우물에서 숭늉을 얻으려 합니다. 이래서 성공한 사례는 한 번도 없기에 누누이 설명을 하고 동행하려 하지만 오래가지 못합니다. 그리고 이후에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봅니다.
스스로의 자평이지만 8년 정도 해온 앞의 중소기업은 이제 어느 고객사를 가도 아주 부드럽게 대화를 시작할 수 있다고 합니다. 웹진의 그 콘텐츠 잘 봤어요, 재미있었어요, 도움이 되더라구요 등등 커뮤니케이션의 시작이 호의적으로 이루어지니 영업사원이나 직원들이 고객을 만날 때 쑥스러움이라 어려움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또한 지난 8년간의 꾸준함이나 지속성으로 인해 적어도 이 회사는 망하지 않겠구나, 속이지는 않겠구나 하는 신뢰로 갱신 계약이나 추가 계약에 머뭇거림이 없다고 합니다.
제가 최근에 하다가 실패한 기업은 이와는 정 반대였습니다. 고객이 원하는 관계를 만들기도 전에, 그 고객들이 원하는 가치를 파악하기도 전에 무조건 자기 메시지와 홍보성 콘텐츠를 한꺼번에 전달하고 싶어 했습니다. 역지사지라고 자신에게 매일 홍수처럼 쏟아지는 홍보성 콘텐츠를 차단하거나 스팸처리하는 행동은 간과한 채 자신은 그렇게 홍수처럼 무작정 쏟아 붙기를 바라고 그렇게 행동하기를 바랍니다.
중소기업들이 원하는 마컴의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꾸준한 진심과 정기적인 관계 형성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일방적인 내 메시지의 전달보다는 고객이 원하는 것을 찾아내는 경청이 필요합니다. 그 이후에야 비로소 고객의 가치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분명한 것은 SNS 마컴은 없다는 사실입니다. SNS 마컴은 앞의 예처럼 고객과의 커뮤니케이션을 부드럽고 우호적으로 풀어가는 가장 중요하고 효율적인 단초에 불과합니다. SNS 마컴으로 씨 부리고 사람과 사람이 직접 만나는 대면 마컴으로 열매를 맺는 것이 중한 방법론입니다.
페이스북에 팬 페이지를 만들었다고, 그룹을 만들었다고, 블로그를 만들었다고, 커뮤니티를 만들었다고, 이메일로 또는 카톡으로 웹진을 발행한다고 고객과의 관계가 만들어졌다고 착각하면 안됩니다. 이런 수단들을 만들었다고 무조건 우리의 메시지를 일방적으로 전달했다고 고객과의 좋은 관계가 형성될 수 없습니다. 씨를 뿌리지도 않았는데 어디선가 쑥쑥 자라나는 잡초 같은 마컴은 없습니다. 땅을 파고 적당한 자리를 찾아 씨를 뿌리고 물을 주고 가꾸어도 어떻게, 얼마만큼 수확할 지 모르는, 오랜 정성 끝에 수확 철에 땅을 파고 수확을 해봐야 그 결실을 아는 고구마 농사처럼 중소기업의 마컴은 그렇게 해야 합니다.
고객을 상대로 하는 마컴은 내 것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고객이, 상대가 원하는 것을 주는 것입니다. 그것도 넘치는 과잉이 아니라, 빨리 수확하려는 조급함이 아니라 항상 진실과 바름으로 커뮤니케이션하는 기다림과 욕심없음이 필요합니다. 남들과 다르게 빨리 성공해야 한다는 강박감, 경쟁사처럼 따라 하는 볼펜처럼 정작 중요한 핵심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하는 숙고가 고객의 가치를 알고 제대로 제공하는 훌륭한 방법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