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 릴레이 인터뷰 - 공감 共感
5월의 기업인 - '더 북 소사이어티' 임경용 대표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과거 20년 전만 해도 휴대용 전화기는 흔하지 않았고 사람들은 공중전화 앞에 길게 줄을 서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스마트폰이 통화뿐만 아니라 지갑, 열쇠, 리서치 등의 역할을 해낸다. 빠르게 발전하는 기술은 우리의 삶을 20년 전과 확연히 달라지게 만들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을 달라지게 만든 것은 기술 뿐만은 아니다. 20년 전 골목 어귀에서 만났던 다양한 공간. 전파사 옆 문방구, 슈퍼 옆 책방과 같은 곳을 생각해보면 현재 공간의 의미도 획기적으로 변하고 있다.
앞으로 공간은 휴대폰의 변천처럼 더 복합적인 기능과 가치를 내포하게 될 것이다. 바로 '더 북 소사이어티'처럼 말이다. 한 때는 책을 구매하는 공간이었던 ‘서점’에서 색다른 가치를 찾아낸 인물이 있다. '더 북 소사이어티'의 임경용 대표를 만나보았다.
고즈넉한 통의동의 한 골목에 위치한 '더 북 소사이어티' 서점 안에는 미술, 영화, 전시에 관한 책이 가득했다. 책의 표지만 봐서는 책의 내용을 가늠조차 할 수 없는 책들이 많았다. 이곳은 예술 특히 미술 분야에 특화된 책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서점의 한 켠은 임경용 대표를 비롯한 세 사람의 작업실이었다. 이런 공간을 만든 그는 어떤 사람일까?
“ 예술, 영화쪽 전공을 했고 영화 이론하고 프로듀싱을 전공을 했고요. 그 분야에서 일을 하다가 비엔날레 일을 하면서 예술 작가들이 만든 책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2009년도에 미디어버스라는 출판사를 시작을 했어요. ”
그가 만든 출판사는 조금 독특했다. 사람들에게 많이 팔릴만한 콘텐츠가 대량생산되는 시스템에서 벗어나 예술 작가, 디자이너들과 사람들 사이에 다리를 놓아주는 소규모 출판 시스템을 시도한 것이었다.
“ 지금은 조금 보편화 되긴 했는데 개인들이 만든 ‘독립 출판’이라고 하는 것이 있어요. 소위 자주출판이라고도 하고 소규모 출판이라고도 하는데요. 요지는 이제 기존에 어떤 출판사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개인이 뭔가 자기 콘텐츠가 있는 경우에 그것을 이제 인쇄를 하고 그것을 유통하고 싶어 하는 경향들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저희는 이제 예술 쪽에 특화돼서 그런 책들을 계속 냈었습니다. 사실 북소사이어티라는 서점도 이런 책들을 유통할 수 있는 플랫폼이 당시에 없었기 때문에 그것을 저희가 직접 해보면 어떨까 해서 2010년에 시작을 한 거예요. ”
임경용 대표의 이러한 시도는 2009년 당시의 특수한 상황과 맞닿아 있었다. 온라인 서점의 몸집이 불어나고 휴대폰의 잇따른 출시로 전자책 시장은 2008년 대비 30%이상 급성장했다. 반면 52년 전통의 대전의 모 서적이 부도를 내고 문을 닫는 등 오프라인 중소서점들에게는 불황의 그늘이 짙어졌다.
“ 우선은 그 당시 만해도 대형, 온라인 대형 서점들 하고 기존의 교보문고, 오프라인 서점, 영풍 이런 곳이 여전히 뭐 되게 위세가 당당했고, 작은 서점들 있잖아요. 소위 동네 서점이라고 했던 곳이 하나 둘 씩 망하고 있는 상황이었어요. 그 때는 사람들이 와서 책을 보려면 대형 서점을 가야했죠. ”
단순히 책을 모아놓고 파는 서점은 동네에서 점점 사라져가는 분위기였다. 이런 상황에서 '더 북 소사이어티'는 공간을 넓히는 대신, 독자들에게 콘텐츠를 바라보는 시각을 넓혀주는 시도를 하게 된다. 그는 직접 아트페어에 참여해 예술 작가들과 교류하면서 그들의 책을 소개하기도 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독자들과 또 다른 예술적 시도를 펼쳐나갔다.
“ 그 때 사람들이 서점에게 요구하는 무언가가 조금 더 있었던 것 같아요. 서점에서 단순히 해외 책이든 국내 책이든 작가가 만든 책을 판매할 뿐만 아니라, 어떤 사람들이 이런 책을 만들고, 어떤 생각을 가지고 만드는지 듣고 싶어 하는 분위기가 있었어요. ”
“ 그래서 저희는 행사를 되게 많이 했어요. 그런데 그 행사가 대단한 건 아니고 사람들 모셔다가 이야기를 들었고 그리고 자기 경험, 노하우를 공유하는 게 대부분이었죠. 토크 뿐만 아니라 공연이나 퍼포먼스 이런 것도 있었고요. 다 이제 주변에 이제 있는 작가들. 지인들. 이런 사람들이 기반이 됐던 거죠. ”
임경용 대표는 현재 출판에 대한 전시도 진행하고 있다. 광주 비엔날레나 일민 미술관에서 임경용 대표가 전시한 작품은 ‘그림’이 아니라 ‘책’이었다. 그림이 걸려있어야 할 자리에 책이 걸리고, 그 책이 어떻게 분류되었는지, 책이 모여 있는 서점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설명한다.
“ 3월에는 그래픽디자인 전시가 일민 미술관에서 있었는데. 여기 일종에 작가로 참여를 하기도 했고요. 그리고 5월달 광주 비엔날레에서 멕시코 작가 도라 가르시아라는 작가랑 서점을 만들었어요. 옛날에 5.18 당시 광주에 있었던 녹두 서점을 다시 1층 전시장 공간에 재연을 하는 것이었죠. 녹두 서점은 중요한 역할을 했었다고 해요. 광주 시민들이 거기서 모임도 갖고 지금은 사라졌는데, 그 공간을 실제로 비엔날레 기간 동안 서점으로 운영을 했었어요. ”
그의 말을 듣고서 어쩐지 이곳, 통의동 '더 북 소사이어티'도 하나의 전시관처럼 느껴졌다. 서점에 가면 책뿐만 아니라 작가를 만날 수 있는 것. 책도 하나의 예술품으로 전시되고, 작가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창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충분히 보여준 '더 북 소사이어티'. 그렇다면 임경용 대표는 왜 이렇게 서점의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가는 것일까?
“ 이런 작업이 필요하다는 것은 본능적으로 알았던 것 같아요. 미래에도 사람들은 책을 계속 살 거예요. 다만 앞으로 책을 통해서 원하는 경험의 질의 달라질 겁니다. 사람들은 인터넷에서 볼 수 있는 정보들을 굳이 책으로 얻지 않죠. 책과 서점은 그것보다 더 특별한 정보와 경험을 줘야겠죠. 그런데 그것은 단순히 많은 책을 가져다 놓고 판다고 해결되는 문제는 아니에요. 좀 더 섬세하고 전문적으로 책을 관리해야 해요. 그리고 책 플러스 다른 가치들을 전해준다던가. 이런 것이 당연히 따라와야죠.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당신도 책을 쓸 수 있다는 것 까지 말입니다. ”
그는 서점과 출판으로 많은 가능성을 열어왔지만 앞으로 더 큰 꿈을 꾸고 있다. 서점간의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형성해 책의 다양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 서점들 간에 새로운 관계들을 만들어 보고 싶어요. 국내가 아니어도 아시아라던가 이런 서점들 간의 네트워크를 만들어 보고 싶네요. 서점을 자료들이나 정보가 모이는 지역 거점으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서울에도 있고 도쿄에도 있고 방콕에도 있고. 서울에 있는 작가들은 저희가 당연히 도쿄 작가들보다는 잘 알잖아요. 당연히 일본 작가들은 도쿄 거점의 서점에서 잘 알겠죠. 그래서 우리가 만약 각자 지역에서 어떤 책들을 수급을 해서 그것을 교류하고 관리를 한다면 되게 훌륭한 콜렉션을 갖춘 서점이 여러 개 만들어질 수 있겠죠. ”
책으로 연결된 네트워크라는 의미의 '더 북 소사이어티'는 지금도 꾸준히 서점의 가능성을 탐색중이다. '더 북 소사이어티'와 중국에서 함께 전시회를 진행했던 뤼징런의 말처럼 이곳은 ‘완벽함’에 대한 기준이 없는 공간에서 자유롭게 비상하려는 사람에게 날개를 펼칠 기회를 준다. 작가에게도, 새로움을 찾아나서는 사람들에게도 동일한 기회를 준다. 그 기회는 세상을 획일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가능성이 넘치는 곳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줄 것이다.